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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별난 삼형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일본인들의 교과서 왜곡사태를 당하고 보니 소년시절 이웃에 살았던 「사부로」네 집이 생각난다. 「사부로」네 집에는 3형제가 있었는데 맨 맏이가 일본이름을 딴「사부로」였고, 둘째는 일본식도 한국식도 아닌 「겐구」였고, 세째가 한국이름인 주환 이었다.
3형제 모두가 한국사람이긴 했으나 이름만은 순 일본식·한일합작식·한국식으로 희한하게 달랐다. 희한한 것은 그 이름뿐만 아니라 행실과 성품도 제각기 달랐다는 점에도 있었다.
첫째인 「사부로」는 요즈음 일본인들만큼이나 기분 나쁜 녀석이었다. 눈치 빠르고 표독하고 막무가내였다. 둘째인 「겐구」는 애답잖게 의젓했지만 어쩐지 꿍속이 있는 느물느물한 녀석이었다. 세째인 주환이는 나보다 두살쯤 아래였지만 경우도 밝고 잔정도 많아서 단짝처럼 지냈다.
아뭏든 나는 그들 3형제와 늘상 어울려 살았는데 「사부로」는 그 성깔만큼이나 곧잘 못된 짓만 골라서했다. 내 여동생의 물건을 통째로 빼앗아가거나 발길질하기가 일쑤였다. 울고 온 여동생을 보고 화가 치밀어서 쫓아가면 「사부로」녀석은 콧등도 보이지 않고 둘째인 「겐구」가 어물쩍 나서서 『아주 빼앗은게 아니야. 그리고 쎄게 때린 것두 아니야.』 어쩌구 하면서 내 등을 밀어내곤 했다.
그러나 세째인 주환이는 생판으로 달랐다. 언젠가 학교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태촌 고개마루턱에서 주환이는 내게 이런 말도 했다. 「사부로」형 말이야, 성질이 아주 못됐어. 아버지한테도 막 대들어. 네동생 뿐만 아니야. 어제도 사고 또 쳤어.』 그러면서 주환이는 제 큰형이 못마땅하다는 듯 투덜거렸다. 어린 맘이었지만 나는 그때 주환이가 제형을 대신해서 내게 정말로 미안해하는 기색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저런 까닭으로 나는 「사부로」네 집을 생각하면 우선 「사부로」가 밉고, 「겐구」를 생각하면 어쩐지 개운치 않고, 주환이를 생각하면 뭐라도 주고싶은 여간 복잡한 심정이 아니었다. 기억 나는데, 우리집 장닭이 「사부로」네 집 텃밭에 들어가 배추씨를 쪼으면 꼭「사부로」가 긴 장대를 메고 나와 사정없이 후들겨 팼다. 어쩌다 우리 집으로 곡괭이라도 빌러올 참이면 반드시 세째 주환이가 왔다. 흔치 않은 일이지만 색다른 음식이라도 우리 집에 가져올 때는 꼭 「겐구」가 가지고 왔다. 부엌에까지 들어가 우리 어머니한테 무슨 잔소리를 하는지 생색을 내곤 했다. 요새말로 헷갈리는 3형제 패거리였다. 그런데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장면, 즉 그들 3형제의 모습이 있다.
언젠가 나는 세째와 약속이 있어 그 집에 갔던 날 밤, 그날이 마침 「사부로」네 제삿날 밤이었던 모양이고 그래서 그들 3형제가 똑같이 옥양목 두루마기를 입고 사랑방에 모여 앉아 있었는데 어쩌면 그렇게도 하나같은 인상이었던지. 표독스러운 「사부로」도, 잔정 많은 주환이도 가릴 것 없이 3형제가 하나같은 얼굴로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먼 훗날 나는 성경을 읽고 『너희 중에 의인이 하나만이라도 있다면』하는 귀절을 읽고 불현듯 주환이 같은 착한 녀석 하나만 있으면 「사부로」네 집은 충분히 구원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후일 나는 내 자식에게 반드시 이렇게 이를 것이다. 『너희들 중에 한사람만은 반드시 착하라. 꼭 한사람만 선량하라. 우리가문은 영원히 번성할 것이다.』 【백성남】
▲1947년 충남보령출생, 고려대 사학과 졸, 현대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 역임, 도서출판 일염주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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