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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 의지해 살지 않겠다"|그룹·인터뷰 중년여성과 노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그 누구도 아무런 불안 없이 노년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일찌기 어느 세대도 오늘 한국의 중년들처럼 다가올 미래에 대해 아무런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세대도 없었던 것 같다.
그룹 인터뷰에 응한 10여명의 중년여성 중 우리의 할머니·어머니세대들이 그랬듯이 『늙어서는 손자·손녀를 돌보며 아들과 함께 살겠다』고 떳떳하게, 자신있게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체로 직장과 사업에서 은퇴한 뒤인 노년을 자식들과 떨어져 살려면 우선 문제되는 것이 경제력. 한국은 아직 노인을 위한 사회보장이 전혀 되어있지 않은데다 대부분이 자녀양육비·교육비·결혼비용 등에 쫓기다보면 이렇다할 저축 없이 정년을 맞게되므로 노후를 생각하면 불안하다는 것이다.
경제력을 갖지 못한 늙은 부모들은 자연히 자녀들의 짐이 되고 이것이 가정불화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것 같다고 TV의 노인프로그램에 오랫동안 출연하며 많은 노인들과 접촉해온 작가 김이연씨는 얘기한다.
『존경받는 부모, 품위 있는 노년』이 되기 위해서는 경제력의 확보가 가장 중요한 요건의 하나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입증이라도 하듯 인터뷰 응답자중 절대다수가 『죽을 때까지는 결코 모든 재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어렵게, 힘들게 생활비를 쪼개어 저축한다 해도 끝없이 유동적인 한국 경제환경 아래에서 과연 20년, 30년 뒤에 그 화폐가치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서지 않아 노년은 더욱 불안하다는 것이 주부 오은환씨의 얘기다. 이러한 불안이 중년 여성들로 하여금 토지투기, 증권과 주식투기, 환물투기에 몰리도록 하는 한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노년에는 남편과 둘이서 단촐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 대부분 중년여성들의 소망. 그러나 『자녀들과는 가까운 곳에 살면서 자주 오가며 지내고 싶다』고 한다. 『사위와 괜찮은 관계라면 딸과 함께 살고 싶다』는 대답도 있었다. 그러나 홀로된 노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생각해 봤다는 여성은 없었다.
78∼79년 경제기획원이 실시한 한국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연령은 남자가 62.7세, 여자가 69.1세. 한국인 부부의 연령차가 평균 3∼5세이므로 여성들은 보통 10∼15년간의 노년을 홀로 지내게 된다. 이 시기를 위한 준비도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사실상 벌써 일부 여성들 사이에는 『친구들과 함께 노년을 보내자』는 생각이 크게 어필하고 있다. 자녀들을 모두 독립시킨 후 젊은 시절부터의 다정한 친구끼리 함께 어울려 살기 위한 근거를 마련키 위해 함께 적립금을 모으고 있는 여성그룹들도 있다.
『나이 들어서도 오래도록 무대에 서고 싶습니다. 원숙한 인생경험이 밴 훌륭한 연기인이고 싶습니다』는 것이 40고개를 갓 넘긴 연극배우 박정자씨의 얘기.
김이연씨는 자신의 노년을 위한 준비로 한국 문단에서의 작가적 위치를 굳혀 늙도록 글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것, 오래도록 건강을 유지키 위한 운동을 꼽는다.
시인 김후난씨는 노년일수록 자신의 일과 취미·종교생활 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노년을 외롭지 않게, 공허하지 않게 보내려면 중년부터 그 기초준비를 해야합니다. 성숙한 인격을 닦는 일, 친구들과 함께 취미생활에 몰두하는 일, 교회나 사회단체의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일 모두가 다 중요합니다.』
1주일에 한번쯤이라도 병원을 찾아가 고즈를 접어주고 보호자가 없는 환자를 들보는 일 등을 통해 사회와 연관을 갖는 것은 여성들에게 소속감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또 일을 통한 보람도 느끼게 한다.
서봉연 교수(서울대·발달심리)는 산업화한 사회에서 핵가족화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말하면서 한국사회에서 갈수록 심각해지는 노인문제의 완화를 위해서는 사회적·개인적 양면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개인적으로 성인교육·사회교육을 통해 젊은이들에게는 누구나 늙는다는 자연현상을 깨우쳐주고, 노인들에게는 전통사회의 장유유서의 폐단인 자녀에의 지나친 기대 등을 말도록 하는 의식계몽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런 노력이 두 세대의 갭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노인을 위한 일련의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한데 정서적·정신적인 면이 고려되지 않은 단지 서양식의 의식주만을 해결하는 양로원제도 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노인들을 다시 가족 속으로 돌려보내자』는 것이 최근 구미에서 노인문제 해결방안으로 다시 대두되고 있다고 서교수는 얘기한다.
따라서 한국에서도 어쩔 수 없는 핵가족화의 물결 속에서도 전통적인 한국가족이 가졌던 소속감·정서적 안정감 등의 장점을 조화시켜 나가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또 정년의 확대, 노년을 위한 직업 재훈련, 노년의 취미개발 등 사회적·개인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박금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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