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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VIP만 초대하는 부시 목장, 어떻게 대접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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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 2003년 2월 부시 미 대통령(右)이 크로퍼드 목장으로 초청한 고이즈미 일본 총리를 픽업 트럭에 태운 채 드라이브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최고의 VIP를 고향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으로 모신다. 지금까지 이곳에 초대받은 세계 정상급 인사는 4일 콜롬비아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까지 모두 16명에 불과하다.

크로퍼드에선 어떤 환대를 할까. 2002년 4월 압둘라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제(현 사우디 왕)를 초청했을 때의 일이다.

부시는 압둘라의 손을 잡고 텍사스 주화(州花)인 블루보닛의 청담색 꽃이 만발한 정원을 거닐었다. 같은 해 10월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에겐 텍사스 전통 음식을 제공했다. 메기 튀김.완두콩 샐러드.훈제 양지머리.돼지 갈비 등을 내놨다.

이 밖에 부시는 초대한 이들에게 픽업 트럭 투어를 제안한다. 화물칸의 덮개가 없는 흰색 소형 트럭에 '친구들'을 태우고 직접 운전하면서 목장을 둘러보는 것이다. 호다운(hoedown) 파티도 연다. 밝고 명랑한 스윙 춤곡이 연주되는 가운데 카우보이 요리사들이 남부 음식을 내놓는 파티다. 이러면 분위기가 좋아지게 마련이다.

부시는 2001년 1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로퍼드를 방문하기 전 "가장 훌륭한 외교는 서로를 잘 아는 데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부시는 크로퍼드 방문 첫 VIP인 푸틴을 맞으면서 " 가끔 세일즈맨을 집안으로 들일 수 있지만 초청은 오직 친구만 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특별한 환대라는 뜻이다.

크로퍼드 초청장은 깐깐하게 사람을 가린다. 부시는 이라크전에 반대했던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을 겨냥해선 "그가 우리 목장에 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감정적으로 가까워질 수 없다는 평가다. 반면 목장을 찾은 사람 가운데 압둘라 왕과 비센테 폭스 멕시코 대통령은 두 번씩 초대를 받았다.

부시는 크로퍼드 초청장을 일종의 외교적 보상책으로 활용한다. 유럽 나라들과 호주.일본이 이라크전을 지지했을 때 해당 국가의 정상을 초청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이번에 콜롬비아 우리베 대통령을 초청한 것도 테러와의 전쟁 과정에서 보여준 협력에 대한 보상이다. 부시는 또 목장 초청을 중요한 문제를 관철하기 위한 로비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장쩌민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를 초청한 뒤 북한에 핵개발 포기를 설득해 달라고 강력히 주문한 게 그 예다.

부시는 전임자 중 같은 텍사스 출신인 린든 존슨(1908~1973)과 비슷하다.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뒤 36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존슨은 크로퍼드에서 남부로 100마일 떨어진 곳에 목장을 갖고 있었다. 그 역시 이곳에서 외국 정상들과 많이 만났다. 목장에서 자란 대통령은 부시와 존슨 두 사람뿐이다. 텍사스 기질이 그런 방식의 외교를 하게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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