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가 있는 아침 ] - 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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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몸 나태주(1945~ )

아침저녁 맑은 물로

깨끗하게 닦아주고

매만져 준다

당분간은 내가 신세지며

살아야 할 사글셋방

밤이면 침대에 반듯이 눕혀

재워도 주고

낮이면 그럴 듯한 옷으로

치장해 주기도 하고

더러는 병원이나 술집에도

데리고 다닌다

처음에는 내 집인 줄 알았지

살다 보니 그만 전셋집으로 바뀌더니

전셋돈이 자꾸만 오르는 거야

견디다 못해 전셋돈 빼어

이제는 사글세로 사는 신세가 되었지


사글세의 설움을 안다면 아직은 내 몸이 집이고 전세일 때 아끼고 섬길 일이다. 흙에서 멀어진 연장에 녹이 슬듯 몸을 부리지 않은 사유가 반짝일 수 없다. 하지만 남용하지 말기 바란다. 몸은 빛나는 정신의 저수지. 마르지 않도록 하자.

이재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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