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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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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찢어지도록 가난한 속에서 흑인이기 때문에 겪어야하는 차별과 냉대를 이겨내고 인간능력의 한계를 넓힌 「에런」은 선수이전에 한인간으로서도 위대하다.
성실한 연습으로써, 야구로써 자기완성을 이룩했고 일상생활에서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검소한 생활로써 모범적인 야구인생을 걸었다. 그래서「홈런의 우상」인 그에게 존경과 찬탄의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행크·에런」의 본명은「헨리·루이스·에런」. 34년 2월5일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남부 앨라배마주의 모빌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허버트·에런」의 8남매 중 세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주급 75달러를 받고 조선소에서 못을 박는 직공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조용한 성격의「에런」은 야구를 무척 좋아해 「조·디마지오」와 같은 대스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가 야구를 시작한 것은 11세 때. 흑인만이 다니는 센트럴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이 때 유격수로서 뛰었고 지역대회에서 우승까지 하기도 했다.
15세 때는 지방 세미프로인 모빌 블랙베어즈에 10달러를 받고 입단, 야구수업을 쌓기 시작했다. 1년 후인 52년5월 니그로 리그에서 가장 유명한 인디아내폴리스 크라운즈팀의 입단권유를 받아 난생 처음 집을 떠났다. 이 때 그가 손에 쥔 것은 샌드위치 두 조각과 팬츠 두벌뿐.
프로선수로서 첫발을 내디딘 크라운즈팀에서의 생활은 고달픈 것이었다. 이 지방, 저 지방을 원정하면서 백인선수들과 침식을 따로했고 선수만의 버스도 타지 못한 채 야유와 멸시뿐인 참기 어려운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오직 야구하나에 인생을 걸고 「위대한 흑인」 의 행군을 계속했다.
크라운즈팀에서 그의 활약이 알려져 메이저리그에 소속된 보스턴 브레이브즈(아틀랜타 브레이브즈의 전신)와 1만달러로 계약했다.
53년에는 남대서양리그의 잭슨빌로 옮겨 3할6푼2리에 홈런22·타점1백25개를 마크, 메이저리그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때 첫부인인 「바버러·루카스」와 결혼했다.
20세 때인 54년 드디어 밀워키로 본거지를 옮긴 밀워키브루어즈에서 화려한 홈런왕으로서의 야구인생을 시작했다. 그의 메이저리그 진출엔 행운도 따랐다. 정규선수였던 「보비·덤슨」이 2루로 슬라이딩하다 발목뼈가 부러져 「찰리·그림슨」감독이 「에런」을 좌익수로 기용하게 된 것이다.
흑인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 없다는 종래의 관례를 47년 브루클린다저즈가 깨뜨리고 「재키·로빈슨」을 입단시켜 「에런」도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 있게돼 두번째 행운이 된셈인 것이다.
「에런」의 타법은 경탄할 만큼 강한 손목을 바탕으로 배트를 마치 채찍을 휘두르 듯 유연했다. 오른쪽 팔꿈치를 높게 쳐들고 휘두르는 스윙은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과 같았고 이같은 멋진 스윙에서 흑인의 신화를 참조해낸 것이다.
73년11월15일 첫부인과 성격상 마찰로 이혼하고 당시 아틀랜타 TV스타였던 현재의 「빌리에·윌리엄즈」와 재혼했다.
「에런」은 73년11월2일 일본을 방문, 일본프로야구 홈런왕 왕정치(현 요미우리자이언츠 조감독)와 세기의 홈런대결을 벌여 10-9로 승리하기도 했다.
76년 23년간 메이저리그에서의 선수생활을 끝으로 은퇴하고 76년 10월7일 자신이 소속됐었던 아틀랜타 브레이브즈의 부사장으로 취임, 선수관리를 담당하고 있으며 브래이브즈의 마이너리그에 대해서도 관리감독의 일을 하고있다.
외롭고 어두운 소년시절을 거쳐 오늘의 홈런왕이 된 「에런」이 올해 출범한 한국프로야구에서 어떤 교훈을 남기고 떠날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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