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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주파수 논란, 프랑스 지혜를 참고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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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일러스트=강일구]
봉지욱
JTBC 정치부 기자

“선진국은 전부 지상파 UHD(초고화질 방송)를 추진하는데 우리만 안 한다.” 지난 1년간 지상파 방송사 메인뉴스의 단골 소재다. 자꾸 보다 보니 학습효과가 쌓인다. “이 좋은 걸 왜 우리 정부는 안 하는 거야.”

 지상파의 눈치를 살피던 미래창조과학부는 이달 초 ‘모바일 광개토플랜’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700㎒ 대역 중 일부를 통신사에 경매하기로 2년 전에 정해놨는데 이를 뒤집겠다는 것이다. 정부 신뢰는 추락하고 시장은 혼돈에 빠졌다.

 그렇다면 지상파 뉴스가 사실일까.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Les Echos)는 최근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황금주파수인 700㎒ 대역을 통신사에 할당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부족한 예산을 채우기 위해서라고 한다. 예상 주파수 경매대금 2조8000억원은 내년도 국방 예산으로 활용된다. 한국의 지상파들의 논리가 허무하게 무너졌다.

 프랑스 사례는 재정난을 겪는 우리 정부도 참고할 만하다. 남은 700㎒ 대역 전부를 통신사에 경매할 경우 2조원가량 확보할 수 있다. 다만 현행법이 문제다. 주파수 경매 대금은 방송통신발전기금으로 편입된다. 용도 또한 한정돼 있다. 그러나 프랑스처럼 법 개정을 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반면 지상파에 700㎒ 대역을 할당할 경우 재정 수입은 ‘0’원이다. 지상파 뉴스에는 안 나오지만 그렇게 될 경우 국민도 호주머니를 털어야 한다. 값비싼 UHD TV를 사야 하고 망가진 옥외 안테나를 자비로 고쳐야 한다. 비용을 들여 고쳐도 심각한 난시청 지역의 경우 전파가 잡힐지는 미지수다. 당장 ‘풀 HD(고화질)+5.1채널 음향서비스’도 제대로 안 하면서 UHD는 ‘사치’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지상파 UHD를 추진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영국 오프콤(Ofcom·방송규제기관)은 지난 19일 700㎒ 대역을 LTE 통신용으로 쓰겠다고 밝혔다. 이유는 간단하다. 황금 대역은 전파 품질이 좋아서 기지국을 적게 설치하는 비용만큼 통신비용 인하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과 캐나다·일본도 황금 대역을 이미 통신사에 할당했다. 역시 지상파 뉴스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머쓱해진 지상파들은 이젠 정치권을 흔든다. 국회 미방위는 지난 11일 700㎒ 주파수 관련 공청회를 열었다. MBC가 생중계했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부 의원은 호되게 공무원들을 나무랐다. 당장 지상파에 UHD용 황금주파수를 주라는 것이다. 이날 한 보좌관은 이렇게 말했다. “지상파가 자기 편 안 들면 다음 선거 보도 때 재미없다는 식으로 나오더라. 사실 우리 의원은 주파수가 뭔지 잘 모른다.” 평소 방송의 독립성을 외치면서, 밥그릇을 위해선 정치권 압박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봉지욱 JTBC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