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가 읽은 서태지+김동률+윤상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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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윤상-김동률

『남자가 겪는 인생의 사계절』의 저자 대니얼 레빈슨에 따르면 40대 중반은 성인기에서 노년기로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하는 시기로 ‘이제 나는 더 이상 젊지 않다’는 명확한 인식에서 시작되는 위기의식이 발현되는 때다. 인생의 반환점,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더 적어지는 시점, 그리고 문득 ‘내 선택이 과연 옳았나? 지금까지 살던 대로 앞으로도 계속 살면 되나? 혹시 내가 가지 않은 길이 답은 아니었나?’ 같은 질문을 하게 되는 나이이기도 하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의 귀절들이 책 속에서 걸어 나와 내게 말을 거는 느낌이랄까.

서태지와 김동률, 그리고 윤상이 바로 그 마흔 중반에 새 앨범을 내놓았다. 모두 1970년대 전후에 태어나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 대중음악의 윤곽을 만들던 이들이다. 그것도 서로 별로 겹치지 않는 영역을 차지하고서다. 그들이 모두 마흔 중반에 이르러 내놓은 각각의 앨범은 역시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서태지는 언제나 새로운 음악을 들고 나타났다. 또한 그는 자신의 가려진 모습에 대해 늘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곤 했다. 기호학자나 평론가들이 덥석 물 만한 고급 떡밥들을 던져놓는 선수이기도 했다.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다. 타이틀 곡의 제목 ‘소격동’은 한옥들이 잘 보존된 추억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예로부터 지금까지 권력자들의 거주지 바로 곁에 해당하는 곳이다. 그 다층적 의미를 담은 장소에 걸맞게 서태지의 노래도 정치와 사회와 역사를 모두 조금씩 이야기한다. 무엇이 본론인지는 듣는 이가 결정할 수 있도록 말이다.

반면에 김동률은 지극히 우직하다. 전람회 시절부터 그의 노래에 담긴 정서는 첫사랑에 대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기쁨, 흥분, 행복함, 열정, 불안, 서투름, 실패, 후회… 남자들이 첫사랑 하면 떠올리는 모든 감정이 그의 노래에 담겨 있다. 그는 가장 연약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가장 마초적인 감성을 노래한다. 세상 모든 마초가 그러하듯, 김동률 노래 속의 화자는 사랑하는 이 앞에서 마음은 뜨거우나 혀는 얼어 있고, 사랑은 흘러넘치지만 행동은 결핍되어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때의 자기 모습을 부끄러워하고 그렇게 놓쳐버린 아름다운 순간을 그리워한다. 영화 ‘건축학개론’과 삽입곡 ‘기억의 습작’은 동명이인과 같았다. 노래를 영화로 만들었다고 해도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둘은 DNA가 일치했다. 이번 새 곡 ‘그게 나ranking야’도 마찬가지다. 너에게 모두 주고 싶었던, 그러나 모두 주지 못하고, 너무 앞서갔고, 결국 너무 쉽게 놓쳐버렸던 나에 대한 후회. 그는 스무살 때부터 인생이 후회로 가득 차게 될 것임을 깨달았고, 지금도 그걸 확인하고 있다. 여전히 후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 모습이 이전보다 더 성숙해졌다고 말할 수 없음을 제외하고는 그의 노래는 가을에 가장 잘 어울린다.

윤상의 노래는 사실 뜻밖이다. 그의 새 노래 ‘날 위로하려거든’에는 분노가 뚜렷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세상을 다 잃은 슬픔을 외면하려는 전부 가진 줄 아는 자들의 그저 뜻 없는 위로”를 말하는 가사 속에는 누군가의 깊은 상실을 대충 덮고 대충 위로하며 남의 일로 치부하고 넘어가려는 태도에 대한 감정이 끓고 있다. 뮤직비디오에는 슬퍼하던 자와 구경하던 자의 입장이 바뀌는 장면까지 넣었다. ‘과연 네가 구경하던 그 슬픔이 언제까지 남의 일에 불과할까?’라고 묻는 것처럼 말이다. 그가 아련한 사랑의 아픔 이외에 이렇게 명확한 감정을 이야기한 적이 있던가. 이유는 모르겠다. 그가 이제는 아버지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예술가로서의 공감 능력이 도달한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으며, 그저 삶의 전환기를 맞이한 40대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는 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세상과 부대껴야 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선택한 새로운 길은 진정한 성숙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이 세 뮤지션의 새로운 음반은 우리나라 대중음악에 조금씩 다른 방법으로 나이테를 하나 덧입히는 사건이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의 관점에서 세 앨범을 평하자면, 김동률이 원래 선택한 길을 우직하게 계속한 반면, 윤상은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고, 서태지는 지속성과 변주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해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심리학자 장근영은… 아침형 삶과 집단주의, 복잡한 대인 관계를 멀리하며 사는 젊은 심리학자. 영화?게임?드라마 등 문화 중독자이기도 하다.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며 최근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를 냈다.

기획=강승민 여성중앙 기자, 글=장근영(『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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