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대학의 교육과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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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문교부가 전문대학의 신설 및 학생정원을 억제, 현 수준에서 동결키로 한 것은 전문대학의 난립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일단 불가피한 조치라하겠다. 문교부는 하지만 이떻게 전문대학을 육성할 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피라미드형 산업구조에서 상층의 고급인력(대졸자)과 하층의 기능인력(중·고졸)사이의 중간기능인을 양성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된 것이 전문대학임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실시 4년이 되도록 전문대학은 설립당시의 이런 기능을 하기는 커녕 그 존재의의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 채 표류하고 있다.
전문대학이 이처럼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물론 여러가지가 있다. 설립자들의 당초목적이 교육외적인데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고 재단의 영세성으로 경영이 부실했던 데도 원인은 있다. 학생들 역시 4년제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잠시 머무르는 「잠정입학」「변의입학」을 했거나 군 입영을 연기 받는 수단으로 여긴데도 그 까닭은 있다.
이처럼 설립목적이나 입학목적이 순수치 못한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문대학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은 한마디로 전문대학을 어떤 방향으로 육성하겠다는 문교당국의 확고한 방침이 서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중간 기능인의 양성기관이라면 전문대학은 종국적인 교육과정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전문대학은「최종교육기관」은 커녕「초급대학」으로서의 구실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온 실정이다. 교육당국의이 문제에 대한 인식이 그 정도였으니 일반의 인식이 더욱 떨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문교부가 전산, 외국어, 관광, 보육 등 몇 개학과의 직업교육을 강화키로 한 것은 그나마 전문대학에 대한인식의 변화로 볼 수는 있지만 이것은 지극히 초보적인 변화에 불과하다.
전문대학이 제구실을 하려면 무엇보다 교과과정부터 개편되어야 한다. 4년제 대학의 1, 2년 과정이 주가 되고 직업교육이 부수적인 것으로 되어 있는 현재의 교과과정을 갖고는 전문대학의 위치는 정착될 수가 없다.
지금의 교과과정을 그대로 둔채로라면 중간기능인으로 입신하겠다는 학생들이 전문대학의 문을 두드릴 리도 없으며, 그 졸업자들에 대한 사회나 기업의 인식 및 수용자세가 달라질 까닭도 없다.
전문대학의 육성이 왜 절실한지는 우리나라의 대학의 보정을 보면 금방 알수 있다. 내년의 경우 대학의 신설과 모집정원에 묶여 대학입학의 관문은 더 좁아질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대학응시예정자가 7만여명이나 늘어날 전망이어서 대학입시경쟁은 금년의 2·78대1에서 3·2대1로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고도산업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고급인력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뒷 받침하는 기능인력과 중간 기능인력도 있어야한다. 뿐만 아니라 어차피 4년제 대학에서 지원자 모두를 수용 할 수 없을 바에는 2년 과정의 전문대학의 필요성은 자명해진다.
문제는 전문대학이 하나의 교육과정으로서 구실을 다하도록 정부가 적극적인 육성책을 펴는 일이다. 재정형편이 어려운 것은 알지만 전문대학에도 응분의 재정적 지원이 있어야 함은 두말 할 여지가 없다.
EC(구주공동체)가입 전 영국이 EC에 대항하기 위해 TEC(기술교육협의회) BEC (보업교육협의회)를 두어 기능인양성을 위한 교과과정을 집중적으로 개발해서 큰 성과를 거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우리로서도 그런 커리큘럼을 우리 실정에 맞게 받아들여 전문대학에서 쓰면 전문대학의 내실화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전문대학이 하나의 교육과정으로 꼭 필요하다고 여긴다면 마땅히 이에 대한 육성방안을 세워야 한다. 전문대학은 기능이나 실업계 전문인력 양성기관이지 대학의「초급과정」은 아니며, 또 그래서는 안 된다. 꼭 필요한 제도가 인식부족이나 운영의 미숙으로 제구실을 못하는 일은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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