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파트」떠나도 전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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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라파트」가 결국 서 베이루트를 떠난다. 레바논 정부가 l8일 각의에서 다국적 평화유지군을 초청키로 결정하고 서 베이루트를 포위하고 있던 이스라엘 군이 PLO(팔레스타인 민족해방기구)철수 사전조치로 포위망을 풀기 시작했으며 PLO게릴라들은 중무기를 레바논정부군에 넘겨주기 시작함으로써 PL0의 서 베이루트 철수 준비작업은 막바지에 이르렀다.「아라파트」가 이끄는 PLO본부는 일단 튀니지로 철수한 뒤 적당한 시기에 다른 아랍국가를 선택, 자리를 잡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밖의 게릴라들은 해상을 통해 시리아·요르단·이집트·이라크·남북예멘 등지로 뿔뿔이 흩어지게된다.
그러나 10주 동안에 걸쳐 밀고 당기는 끈질긴 협상 끝에 이루어지는 이번 PLO의 서 베이루트 철수로 레바논사태가 완전히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초「갈릴리평화작전」이라는 이름아래 PLO소탕전을 벌였던 이스라엘 측으로서는 PLO본부를 성이루트에서 추방시키는데 성공한 것은 제2단계 목표의 달성에 불과하다.
당초 이스라엘은 「갈릴리 평화작전」의 궁극적인 목적은 독립 레바논과 평화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북쪽 국경지대에 영구한 평화를 심는 것이라고 발표했었다.
제1단계 목표는 개전 1주일만에 PLO게릴라들을 야포거리(40km)밖으로 몰아냄으로써 성공했고 제 2단계는 두 달 동안 PLO를 서 베이루트에 가둬 놓고 압력을 가한 끝에 굴복케 함으로써 성공직전에 있다.
제 3단계는 모든 외국군의 레바논으로부터의 철수로 바로 지난 76년이래 아랍 평화군 명목으로 레바논에 주둔하고 있는 시리아 군을 몰아내는 것이다. 제4단계는 그런 연후에 레바논에 친 이스라엘 정부를 세워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이스라엘의 시나리오는 레바논이나 시리아, 그리고 PLO등 레바논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당사자들의 의사와는 동떨어져 있는 것이지만 탱크를 앞세운 이스라엘의 계획인만큼, 그리고 이스라엘의 힘을 꺾을 만한 당사자가 존재하지 않고 있는 현실인 만큼 이스라엘의 의사가 그대로 달성되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미 이스라엘은 베카계곡에 주둔하고 있는 3만의 시리아 군을 몰아내기 위해 기갑사단을 베이루트 북쪽32km 떨어진 주베일항과 동쪽산악지대에 위치한 라크루크 마을에 집결시키고있다.
시리아군은 지난7월 27일로 아랍 평화군 자격으로 레바논주둔이 시한 만료되었지만 시리아 정부는 이스라엘 군이 레바논 국경 안에 들어와 있다는 이유로 철수를 거부하고 오히려 탱크·장거리 야포·대전차 미사일등 중무기로 화력을 증강시켜왔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이스라엘 군과 시리아 군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며 「하비브」미대통령특사의 중재노력은 금년 겨울까지 연장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양측의 군대가 정면충돌하면 지난 10주 동안의 전투이상으로 많은 인명피해와 격전이 될 것이라고 서방군사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이스라엘 군은 제3단계작전을 위해 이미 베카계곡의 시리아 군을 포위하기 시작했으며 「아리엘·샤론」이스라엘국방상은 『만약 평화적으로 철수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군은 다마스커스의 코앞에까지 진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베카계곡에 주둔하고 있는 시리아 군은 전술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 북쪽·남쪽·서쪽에서 포위망을 좁혀 오는 이스라엘 군은 지형적으로 계곡안의 시리아군보다 높은 위치에 포진하게 되고 절대 우세한 공군력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시리아군을 쉽게 압박할 수 있다.
이스라엘 군의 3단계작전은 시리아군을 추방하는 것과 함께 베카계곡과 트리폴리 주변에 주둔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의 소탕도 포함하고 있다.
현재 트리폴리 지역에는 5천, 베카계곡에는 2천의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은 서 베이루트에서 철수하는 숫자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제3단체 작전도 제1, 2단계와 마찬가지로 군사적으로 압박을 가한후 협상을 통해 스스로 떠나도록 할 가능성이 크다. 베이루트의 서방소식통들은 금년 겨울쯤 이 같은 협상이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제 4단계 목표달성은 군사적인 힘을 전제로 했던 1∼3단계와는 달리 정치적인 문제가 게재되기 때문에 더욱 어려울 것이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안에 고립된 팔레스타인 촌이 형성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팔레스타인 촌이 형성되면 게릴라들이 양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레바논 안에 흩어져 일반주민으로 살아가길 원한다. 그러나 이 같은 목적은 이스라엘의 행정력이 직접 미치지 않는 한 달성되기 힘든 것이다.
친이스라엘 정부를 세워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쉬운 문제가 아니다. 우선 레바논이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체결하면 아랍권으로부터 고립된다.
현재 레바논의 경제가 전적으로 아랍권과의 관계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이스라엘이 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 한 평화조약의 체결은 쉽지 않다.
사실 레바논 지도자들은 이스라엘과의 적대 관계는 원치않지만 정치적으로 이스라엘과 결탁하는 것도 원치를 않고 있다. 그것은 곧아랍과의 관계단절을 의미하며 그렇게 되면 국가경제의 어려움은 물론 내정에 새로운 문제를 야기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PLO게릴라들의 베이루트철수를 감시 할 다국적 평화유지군은 미국·프랑스·이탈리아 군으로 구성되는데 간·서베이루트를 가르는이른바 녹색선을 따라 배치된다. 이들은 PLO전사들의 철수가 완료되면 임무가 완성된다.
이와 달리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지대에 배치되어있는 유엔 잠정군 (UNIFIL)은 이번 철수와는 관계없이 계속 평화임무를 수행한다.<이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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