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요소 뺀 「실명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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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정당이 정부측과 절충을 끝내 17일 확정 발표한 7·3조치보완방안은 한마디로 정부안의 명분만 살린 현실적 실명화 처방이라고 할 수 있다.
민정당의 한 관계자는 「실명거래제를 내년부터 실시한다」는 정부측 방안의 주춧돌만 남기고 그 위에 들어설 건물은 정부설계와는 완전히 다르게 새로 지었다고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만큼 민정당측 보완책은 급격하고 충격적이었던 정부측의 구상을 완만하고 우회적으로 개조해 놓았다.
당초 정부측이 7·3조치를 발표할 때는 이철희·장영자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사채를 양성화하고 기업자산의 부당한 유출방지, 은닉자산의 기업환류로 기업의 재무구조개선을 꾀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모든 금융거래를 실명으로 양성화함으로써 지하경제를 제도금융으로 흡수한다는 구상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이 같은 충격적 조치로 저축의욕의 감퇴, 재산의 해외도피, 부동산 투기, 귀금속 매입 등에 의한 재산의 퇴 등이 우려됐고 실제로 저축성예금의 감소, 암달러값의 폭등과 같은 현상이 빚어졌다.
민정당측은 이 같은 충격을 흡수하면서 실명거래제를 단계적으로 도입, 정착시킨다는 방침아래 지방에서의 간담회와 공청회 등을 열어 각계의견을 수렴했고 큰 줄거리는 지난 6일 진의종 정책위의장이 대통령에게 보고하여 결심을 얻음으로써 민정당 의견이 거의 반영되게 됐다.
민정당의 보완방안은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거액의 무기명가명예금에 대한 자금출처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둘째 이자소득에 대한 종합과세를 상당한 준비기간을 거칠 때까지 연기함으로써 불필요한 조세마찰을 회피하며, 세째 법인세·종합소득세율을 정부측보다 약간 올림으로써 재정수입의 격감을 방지한다는 것이다.
민정당도 내년부터 신규예금을 실명화해 나간다는 원칙에는 이의가 없다. 다만 정부가 83년6윌30일까지 실명화하지 않을 경우 자금출처를 조사하고 만기 안된 정기예금과 기간이 도래하지 않은 유가증권까지 5%의 특별과징금을 부과한다는 것이 형평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것은 자칫하면 국민의 재산권을 소급입법을 통해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민정당측의 계산으로는 현재의 무기명·가명예금을 최대한으로 잡아도 전체예금의 50%수준이다. 앞으로 신규예금을 실명화해 나가면 무기명·가명예금의 비율은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고 따라서 현재 8조원에 달하는 무기명·가명예금이 고스란히 실명화 되지 않더라도 앞으로의 저축증가율·경제성장률에 비춰 볼 때 86년에는 전체예금의 25%, 89년에는 10%정도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금출처조사 등 무리한 수단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신규예금의 실명화 하나만으로도 실명거래제를 순리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실명거래제를 보다 빠르게 유도하는 방안으로 무기명·가명예금의 이자 소득에 대한 과세율을 단계적으로 높여가자는 것이다.
민정당측은 기본적으로 실명제가 사채근절의 가장 유효한 수단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 한가지 예로 실명제를 제도상으로 가장 강력히 실시하는 이탈리아에는 지하경제의 규모가 오히려 더 크다고 한 관계자는 지적하고 있다.
결국 돈의 가격이 이원구조를 갖게되고 돈의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면 사채는 발생하게 마련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실명화」라는 제도 하나로 음성적 금융거래를 발본할 수는 없으며 제도금융의 자금공급능력을 확대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저축의 증가가 필수적이라는 논리다.
그 저축의욕을 감퇴시키는 조치는 의욕적인 계획 그 자체를 무너뜨릴 위험을 안고 있다고 본다.
또 5차5개년 계획 달성을 위해 필요한 내자동원을 위해서 저축률을 높여야할 시점에서 보면 이번 조치는 무리를 내포하고 있고 만약 중도에 저축률이 떨어져 다른 저축유인수단을 동원하게 되면 그것도 실명화계획을 유명무실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 민정당측의 분석이다. 이번 조치 중에서 정부와 당이 가장 논란을 벌였던 부분은 이자·배당소득에 대한 종합과세다. 정부측은 내년7월부터 모든 금융자산을 개인별로 집계하여 종합과세를 실시하고 세정의 전산화를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정당측은 현재의 세정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우선 모든 금융기관을 전산화하는데 l조원이라는 막대한 돈이 들뿐 아니라 현재의 주민등록 컴퓨터 시스팀과 국세행정을 연결하는 전산화 작업은 1개 부처만으로는 가능할 수가 없는 방대한 작업이라는 것이다.
이미 실시하고있는 부과세만 해도 과세 특례자가 80%나 되는 등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만 봐도 이자·배당소득 등의 종합과세는 의욕만 앞선 것이라고 민정당측은 비판하고 있다.
종합과세는 실질적으로 90년대로 연기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 배경에는 정치적 고려도 개재돼 있는 것 같다. 만약 종합과세의 조기실시로 세정의 혼란과 조세저항 등을 유발할 경우 그것은 민정당에는 큰 실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측이 6·28조치로 법인세를 일률적으로 20%로 내리고 종합소득세 최고세율도 60%에서 40%로 대폭 인하하려는데 대해서도 민정당측은 크게 반발, 이를 올려 조정했다.
이것은 고소득층에 대한 이중혜택일 뿐 아니라 정부의 재정수요를 감안하지 않은 처사라는 비판을 가했다. 특히 공개·비공개법인에 차등을 두어 기업의 공개를 유도한 과거의 정책을 뒤집은 것은 정부정책에 순응하지 않은 기업이 결국 득을 보게 하는 결과가 된다고 주장한다.
만약 이중감세로 재정자체가 불안정하게 되면 계속적인 인플레의 압력을 받게되며 경기회복·국제수지개선이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정부재정까지 불안정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이 민정당측의 주장이다.
7·3조치보완에 관한 민정당측 의견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를 놓고 볼 때 과연 실명금융거래제 실시에 따른 특별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대부분의 방안은 관련세법정도의 개정만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형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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