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민당 개헌 초안 첫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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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집권 자민당이 1일 헌법 개헌안 초안을 발표했다. 일본의 주요 정당이 헌법 개정안을 조문 형태로 만들어 공식 발표하기는 처음이다. 이에 따라 개헌 논의가 한층 가속화될 전망이다.

초안의 가장 큰 특징은 현행 헌법의 평화적 성격을 상징해온 9조 2항(육.해.공군 등 전력 보유 및 교전권의 금지)을 폐기하고, 군대(자위군)를 인정한 점이다. 9조의 명칭도 현행 '전쟁 방기(放棄.포기)'에서 '안전 보장'으로 변경했다. 군대가 해외의 무력 활동에 손쉽게 참가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초안은 "국제분쟁 해결수단으로서 전쟁과 무력은 영구히 행사하지 않는다"(9조 1항)는 규정은 유지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본 방위 정책의 중심이 평화에서 안보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현행 헌법은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뒤 1947년 제정됐다.

자민당은 여론을 수렴, 11월 창당 50주년 행사 때 개헌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개헌은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3분의 2 이상, 국민투표에서 과반수가 각각 찬성해야 한다. 자민당은 연립 파트너인 공명당과 제1야당인 민주당과 합의해 최종 개헌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일본 정계와 국민 사이에는 군대 인정 등 안보 강화에 찬성하는 의견도 많다. 따라서 초안의 상당 부분이 최종 개헌안에 반영될 가능성도 크다.

◆ 군대 인정=초안은 "국가의 평화와 독립,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자위군을 보유한다"고 명기했다. 자위군은 활동하고 난 뒤 국회의 사후 승인을 받을 수도 있다.

군대가 인정되면 일본이 군사 대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제도적으로 열린다. 일본은 이미 자위대 24만여 명과 이지스함 4척 등 최첨단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군사비 지출도 세계 2~3위로 평가된다. 게다가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는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부추기고 있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군사력 강화에 나설 경우 중국과의 마찰과 동북아 안보질서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 군대의 해외 파견 길 확대=아사히(朝日)신문은 2일 "자민당 초안은 '자위군이 국제적으로 협조해 이뤄지는 활동에도 참가할 수 있다'고 명기함으로써 해외 무력 활동에 참가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분석했다. 현재는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하기 위해선 대부분의 경우 테러방지법 등 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 그러나 자민당 초안대로 되면 웬만한 경우 특별법 없이도 군대를 해외 파견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초안은 현행 헌법의 '교전권 금지'조항을 폐지해 군대의 무력 사용을 용이하게 했다. 현재는 방어 목적에서만 제한적으로 교전할 수 있다.

◆ 헌법 해석으로 집단적 자위권 인정=현재는 일본 정부가 헌법의 해석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을 금지하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은 동맹국이 무력분쟁에 휘말릴 경우 지원할 수 있는 권리다. 이번 초안에도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규정은 없다. 그러나 자민당은 헌법 해석을 변경해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키로 방침을 정했다. 극단적으로 미국과 북한 사이에 무력 분쟁이 있을 경우 일본이 북한과 전쟁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셈이다.

◆ 정치.종교 분리 완화=현행 헌법은 정교 분리를 명기하고 있다. 신도를 국교로 하고, 일왕을 신격화해 군국주의로 치달았던 일제의 경험 때문에 매우 중시되던 조항이다. 그러나 자민당 초안은 '사회적 의례의 범위 내'에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종교 활동을 용인하고, 종교단체에 대한 공금 지출도 허용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대한 논란의 소지를 없애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오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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