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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축구, 15년 만에 중국 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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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 한국 여자축구의 대들보 박은선(中)이 후반 20분 골문을 등진 상태에서 절묘한 오른발 힐킥으로 쐐기골을 넣고 있다. [전주=연합뉴스]

투혼의 태극낭자들이 15년 만에 처음으로 만리장성을 넘었다. 남자축구의 공한증(恐韓症)은 살아있지만 여자축구에서 공중증(恐中症)은 사라졌다.

안종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이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1차전에서 중국을 2-0으로 꺾고 첫 승을 올렸다.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0-8패) 이후 대표팀 간 15번 맞대결에서 3득점.70실점의 참담한 성적으로 전패했던 한국 여자축구의 통쾌한 반전이었다.

이날 경기장에는 4000여 명만이 자리를 지켰다.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붉은 악마' 응원단은 불과 10여 명. 그러나 한국 선수들의 놀라운 분전은 모든 관중을 붉은 악마로 만들어 버렸다.

한국은 전반전 수비수와 미드필더의 유기적인 협력 수비로 중국의 예봉을 차단한 뒤 빠른 원터치 패스로 역습을 노렸다. 전반 43분 페널티지역 오른쪽을 돌파하던 정정숙(대교)이 중국 수비의 파울로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대표팀에서 킥이 가장 정확한 한진숙(INI스틸)이 키커로 나섰다. 한진숙은 골키퍼를 완벽하게 속이며 가볍게 골을 성공시켰다.

안종관 감독은 페널티킥을 차기 직전 정정숙을 빼고 '에이스 카드' 박은선(서울시청)을 투입했다. 박은선은 수비 두세 명을 가볍게 따돌리는 스피드와 몸놀림으로 한국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후반 20분 쐐기골이 박은선의 발끝에서 터졌다. 한국 진영에서 얻은 프리킥을 홍경숙(서울시청)이 문전으로 길게 날리자 박은선이 뛰어들며 슛을 했다. 골키퍼가 공을 쳐내는 순간 박은선은 골대를 등진 상태였다.

그러나 박은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른발 힐킥으로 볼을 골문 안으로 찍어 넣었다. '여자 호나우두'라는 별명이 허세가 아님을 보여준 멋진 장면이었다.

중국의 반격이 시작됐지만 한국 선수들은 큰소리로 서로 격려하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베테랑 유영실(INI스틸)은 노련하게 수비진을 지휘했고, 차연희.한송이(이상 여주대) 등 신예들도 몸을 사리지 않고 뛰었다.

안 감독은 "15년 만에 중국을 이겼다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여자축구도 곧 중국을 넘어 세계 정상으로 올라설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이 강호 중국을 꺾음으로써 4일 전주에서 벌어지는 남북 맞대결은 남자 못지않게 여자 경기도 치열하게 전개될 것임을 예고했다.

북한은 일본을 1-0으로 누르고 서전을 장식했다. 북한은 전반 38분 조윤미가 찔러준 볼을 이은숙이 잡아 골키퍼를 넘기는 슬라이딩 슛으로 결승골을 뽑아냈다. 이로써 여자부는 1승씩을 거둔 남북한이 골득실차로 1, 2위를 달리고 있다. 북한의 스트라이커 진별희는 출전하지 않았으며, 이금숙은 예리한 패스와 과감한 돌파로 명성에 걸맞은 활약을 했다.

전주=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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