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의 슬픔과 한을 예술로 승화|공씨의 기구한생·예술십념 생생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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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자,우리덜 함꾸네(함께)미쳐 봅시다요. 얼씨구 저절씨구 문뎅이 춤이나 춥시다요. 문뎅이가 따로 있당가요, 소록도에 오면 공옥진이도 문뎅이제.』
턱끝을 가슴에 찰싹 붙이고 눈물 하얗게 뒤집어 쓰고 두 팔을 오그려 안팎으로 비틀고 엉덩이를 삐딱하게 옆으로 찌고 다리를 퍼덕이며 공왕진씨는 나환자들 틈새로 파고 들어 갔다.
환자들의 어깨가 굿장단에 맞춰 들썩거렸다. 어느새 수백 명의 환자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굿장단에 온몸을 걸레 쥐어짜듯 비틀며 옴축거렸다, 춤을 추었다.
얼마안가 강당 안은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다.
병신춤의1인자 공옥진씨(49). 그녀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슬픔을 그녀의 예술(병신춤)을 통해 카타르시스 시키려는 노력으로 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소설가 문순태씨는 이러한 공씨의 생을『병신춤을 춥시다』란 제목으로 소설로 썼다.
『공씨와 오랫동안 인터뷰 했읍니다. 또 직접 춤을 보면서 춤을 추는 그녀의 육체속에 깃든 사람의 정신을 보았읍니다.』문씨는 그러면서 소설 속에도 썼지만 공씨가 병신춤을 추는 것은 『몸이 불편한 사람도 음악이 흐르면 흥겨워 한다, 그들로 하여금 노래와 춤으로써 그들 내면에 맺혀있는 마음과 육신의 한과 고통을 분출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다』 는 공씨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소설에서 이씨는 공씨의 기구한 생과 예술에의 집념을 생생하게 그렸다.
노래꾼인 아버지 밑에 태어난 공씨는 어릴때부터 노래와 춤에 재능을 보였으나 가난에 찌들려 공부를 하지 못한다.
그녀는 징용에 끌려가게 된 아버지때문에 무용가 최승희에게 팔려 일본에가 모진 고생을 한다. 그러면서 어깨너머로 춤을 배운다. 귀국 후 그녀는 임방울 창극단 등에서 춤추고 노래한다.
문씨는 이 소설에서 한 여인으로서의 공씨와 예술가로서의 공씨의 갈등을 남편과의 헤어짐, 석인과의 멋없는 사랑으로 절실하게 표현하면서 끝내 예술을 버리지 못한 공씨를 그리고 있다.
병신춤을 추게된 것을 한 많은 생을 살아온 공씨가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었기때문에 가지 않을수 없었던 필연적인 예술세계였다고 파악한 문씨는 그녀가 병신춤을 익히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리고있다.
공씨는 하천 다리밑에서 걸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병신춤을 알게 되었고 그후 요정을 하면서 불구자들을 불러 술을 대접하면서 춤을 배우느라 요정이 망하기까지 하였다.
공씨는 처음 무대에서 병신춤을 추었을 때 관중들이 웃기만 하는 것에 비애를 느꼈고 자신의 병신춤에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또 불구자들로부터「놀리느냐』고하며 매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78년 정병호교수(중앙대) 애 의해 그녀의 춤이 서울공간사랑에서 발표되면서 그녀는 그녀의 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된 것을 알고 희열을 느끼게 된다. 관중들은 그녀의 춤을 보고 웃지 않고 울었다.
흰 무병베치마·저고리에 털메기를 신고 검은 띠로 허리를 질끈 동인 그녀는 그날『황주망 도화동에 맹인이 살았는디 성은 심이요, 이름믄 학구라고 허든갑습디다요』라고 허두를 띄워놓고 심청가를 뽑고 나서 놀음판에서 57가지 변신 춤을 추었다.
공씨는 이날 공연으로 한 이름없는 여인에서 우리 춤의 계승자로 부각되었다.
혼신을 다해 춘 그녀의 춤은 깨끗하고 세련된 것이 아니라 원초적인 몸짓과 율동이 었으며 세상의 권위나 허식·체면 따위는 통하지 않는 그저 관객과 한 덩어리가 되어 한바탕 질편하게 노는 것으로 그 속에 우리 옛 민중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병신춤은 사당패들이 즐기던 자리판 놀음으로 원래 각지방에서 볼 수 있는 것이었는데 일제 때 우리 전통적인 민속과 놀이가 억제되면서 사라져가기 시작한 것을 공씨가 다시 살려 놓은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공씨는 이날의 성공이 발판이 되어 81년 미국에 가서 워싱턴·뉴욕·로스앤젤레스에서 공연하고 일본동경에도 들렸다.
그녀는 82년 소록도에서 문둥병자들과 함께 문둥이춤을 추면서 그의 예술과 환자들의 고통과 한이 혼연일체가 되는 희열을 느끼는 가운데 최고의 예술적 경지를 얻게된다고 작가 문씨는 서술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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