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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려고만 하지말고, 지는 자세를 배우라는 청담스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나의 은사 청담큰스님께서 유명을 달리하신지도 어언 10년이 지났다.
세윌의 흐름속에 무상한 인생과 지난 나의 우매함을 새삼 깨달을 때마다 큰스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가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범사인 내가 청담큰스님을 은사로 모시게 된 것은 세속을 떠나 출가했던 전남고성 문수암 주지스님의 인연이였다.
청담큰스님의 맡상좌였던 주지스님이 나를 큰스님에게 소개해주었던 것이다.
청담스님 밑에서의 가르침은 말보다는 행에서 , 행보다는 이심전심의 깨우침이 더큰것이었다.
도선사 큰스님 곁을떠나 경북영천은혜사에서 수도를 하던때의 일이다. 당시 은혜사 수동승사이에는 불교정화 운동이 벌어져 내가 정화의 선봉에 서게됐다.
젊은 혈기와 옳은것에 대한 믿음으로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나는 불자로서의 잘못을 들어 대처승인 한 노스님의 퇴진을 요구했다.
우리의 정화운동이 성과를 거둬 노스님이 주지의 자리에서 불가피하게 물러나게 됐을 때 스님의 마나님이 나를 쫒아왔다.
『실재 살림을 크게 차린것도 없고 의무관으로 군대에 있는 아들이 6개윌후면 제대를 하게되니 그때까지만 스님의 퇴진요구을 참아달라』는 인간적인 호소였다. 그날밤 내가 행하고 있는일이 진실로 옳은일인가에 대한 번뇌로 잠을 뒤척이다 새벽이 가까워서야 눈을 붙일수 있었다.
그때 가사장실에 육관장을 짚으신 청담큰스님이 다가와 『부산 신언사를 찾아가 승려의 참길을 찾으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지셨다.
꿈에서 깨어난 나는 미처 깨닫지 못한바가 있음을 탄식하고 짐을 싸 그길로 부산으로 떠났다.
『남에게 이기려만 하지말고 지는 자세를 배우면 세속의 번민과 고뇌를 벗어나리라』던 큰스님의 선법이 되살아났던 것이다.
수계식때에는 『은은한 가운데 도를 깨우치라』고 글자풀이까지 해주시며 현황이란 법명을 주신 큰스님.
평소 지니는 사소한 마음자세의 헤이함이 큰일을 그르치는 원인이 된다고 평상심시도(평상심시도)를 실하신 큰스님의 가르침속에 찰나의 합이 인생임을 알고 오늘도 나는 참나(진아)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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