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값 폭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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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때「금배추」라는 소리도 듣던 배추, 무우 값이 폭락하여 농민들의 실망이 크다.
엊그제 사회면엔 방치된 무우밭이 쓰레기장처럼 황폐하게 버려진 사진이 실려 마음을 아프게 했다.
개당 60원 하던 무우 값이 계속 떨어져 요즘엔 2원 5전에도 사려는 사람이 없자 무우를 뽑지않고 내버려둔 농민의 마음이 너무나 아프게 전해져 온다.
물론 이렇게 밭에서 썩어버리는 채소는 아주 효용이 없는 건 아니리라. 농토에 거름이 되고 지력의 향상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싱싱한 채소를 내다 팔지 못하고 썩이고 마는 농민이 생업에 대한 회의와 의욕상실로 연결되어 농업생산 자체의 혐오로 발전할까 적이 우려된다.
실제로 무우를 썩이고있는 농부는 내년에도 채소값이 계속 폭락한다면 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말하고있다. 풍작에 따른 과잉생산과 소비부진에 의한 물가폭락이 농민들의 생산의욕을 감소시키고 농업자체에 회의감을 갖게 한다는 것은 국가적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풍작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농사가 잘 돼서 국민들이 풍부한 식량을 싼값에 공급받는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다.
그러나 생산가를 밑도는 가격으로 농민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정도가 되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어딘가 농정의 결함과 부실에 원인이 있다고 하겠다.
채소는 물론 주식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부식이다. 그 점에서도 채소농사의 중요성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채소농사가 흉작이 되었던 수년 전엔 김장파동으로 전국민이 고통을 겪기도 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채소값에 김치 아닌「금치」로 바뀌었던 기억도 새롭다.
그러나 무우, 배추 등 채소값이 지금 작년 같은 때의 4분의 1 수준이 되었다.
농수산부가 올해 채소수급을 적절히 조절하지 못했다는 뜻도 된다.
실제로 농수산부는 고냉지 배추, 무우 생산량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발표로는 작년에 비해 10%정도 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서울 용산 채소도매시장 반입량이 무려 38%까지 늘고 있다.
이는 농수산부 통계의 신뢰도를 의심케 한다.
농수산부 농업지도에도 문제가 있다. 개량품종보급이나 재배기술향상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와 함께 농민들의 작목선택을 적절히 지도한 것인지 묻고싶다. 작년에 배추농사가 재미를 봤다고 해서 올해도 대거 그쪽으로 쏠리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농정이랄 수가 없지 않은가.
또 국민들의 채소소비패턴 변화에 대응한 농사지도와 소비조장에도 농정당국은 적극적으로 대처했어야 했다. 냉장고의 보급으로 소비기간의 장기화가 이루어지고, 일반가정의 알타리무우 선호로 통배추와 통무우 기피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이에 대응하는 대책도 취하는 것이 적절한 농정이겠다.
물론 올핸 풍작에다가 장마가 짧아 유통감모가 적었던 것도 채소값 하락의 원인이 된 것은 인정할 수 있다. 81년에만 무려 1천 3백억원 어치가 썩고 상했던 데 비해 올해는 그런 감모가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채소값의 안정을 위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가장 중요한 유통구조의 문제를 좌시할 순 없다. 생산지에서 3원하는 무우를 소비자는 3백원에 사먹어야 하는 현실의 문제다.
생산자도, 소비자도 아닌 중간상인을 위한 조직이 유통구조라는 뜻이다.
농정은 생산자의 손해를 막아주고 소비자의 이익을 높여주기 위해 이 기회에 유통구조의 개선에 힘을 기울여야겠다.
이젠 풍작·흉작간에 채소값 파동을 매년 되풀이 겪어서도 안되겠다.
여름 채소값의 폭락에 따른 농민들의 생산의욕 감퇴를 우려하면서 가을 채소값은 물론 내년, 후년의 채소값 안정에 대비해서 농정당국이 지금부터 세심하게 대처해 나서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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