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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부터 달래고 보자″…구차스런 행차-왜곡해명 일본특사 중공파견의 속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중공측의 출영인사는 한사람도 없이 8일 북경에 도착한 외무성의「하시모또」(교본서) 정보문화국장, 문부성의「오오사끼」(대기인) 학술국제국장 등 2명은 문제해결을 위한 일본측의 방안을 휴대한 것도 아니고 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위한 교섭권한도 없어 특사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가 이들을 파견한 목적은 시간을 끌어 중공 안의 여론이 가라앉기를 기다리자는 것과 중공의 진의를 타진, 가능하면 올해에는 교과서의 시정 없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자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저의는 인선에서도 엿보인다. 외무성의「하시모또」국장은 72년 일본-중공 국교정상화 당시 중공과장으로서 정상화작업에 크게 기여했으며 지금도 일본 안 사회·공산당으로부터 그때의 공로를 높이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중공측이 호감을 갖고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문부성의「오오사끼」국장은 일본에 유학중인 5백여명의 중공 유학생을 불러들이는데 애를 썼으며 북경에 일본-중공병원을 설립하는 등 역시 중공과 친밀한 관계다.
이번 국장급 특사파견 제의를 중공이 받아들인 데 대해 일본 국내에서는 바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중공에 집중적 노력을 기울이면 한국보다는 쉽게 문제가 해결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일고있다.
일본측이 이같은 기대를 갖는 배경에는 15년간의 중일전쟁이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통치와는 비교가 안되며 비판의 소리도「한국쪽이 훨씬 강하다」는 점과,「사회체제로 보아 중공은 한국과 달리 국내여론의 통제가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무도 말은 안하지만 중공문제가 해결되면「한국의 강경한 태도는 절로 무너진다」는 속셈이 엿보인다.
일본 신문들은 한국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일본정부가 중공문제에 전력을 기울일 방침이라는 사실을 계속 흘리고 있다.
그러나 중공측의 태도는 그리 만만치 않다.「하시모또」일행이 8일 하오 7시 15분 북경에 도착했을 때 중공 당국자의 얼굴은 한사람도 안보였다.
이들 일행은 중공의 누구와 만날 것인지조차 결정짓지 못한 채 무조건 중공항을 밟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도착하기 전날인 7일에는 남경에서 역사개조에 항의하는 집회가 있었고, 북경일보는 8일부터 일본 관동군의 세균전부대를 폭로한『악마의 포식』(삼촌성일 작) 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중공의 당중앙 대외연락고문 장향산, 중일우호협회 부회장 손평산, 외교부 제1아시아국장 소향전 등 중공의 대일정책 관계자들은 7일 북경을 방문중인 일본의「사회당청년활동가 방중단」(단장 소천신) 을 만난 자리에서『잘못된 교과서 내용의 시정 외에 다른 해결책은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소향전은 9월로 예정된「스즈끼」(영목선행) 일본수상의 중공방문에 대해『우호적인 관계 속에서 맞고싶다』는 말을 함으로써 중공이「스즈끼」수상 중국방문 전에 교과서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뜻을 갖고있음을 나타냈다.
중공은 9월 1일부터 열리는 공산당 제12차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서방 외교자세를 구체적으로 재정리할 필요를 안고있다. 이런 차원에서도「스즈끼」수상의 중공방문 용인여부는 적지않은 의미를 갖게 되며 교과서문제를 독촉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이 때문이라고 관측통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같은 내부사정과 속셈을 가진 중공이 실권 없는 국장급 특사를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 한 일본 언론인은『중공의 외교스타일의 하나일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교과서문제해결을 위한 일본의 실권 없는 국장파견과 이를 거부한 한국의 자세, 받아들인 중공의 태도가 제각기 그 나라의 국민성과 외교스타일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본의 교과서문제 해결속셈은 시정한다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한다고 선언하고 올해에는 정오표 선에서 머무르겠다는 것으로 일본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다.
두 국장은 일본의 이런 속마음에 대한 중공측의 의사를 타진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런 방식이 중공에 의해 받아들여진다면 일본측은 한국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의 해결을 모색할 것이라는 것이 일본 외교 소식통들의 분석이다.
「스즈끼」일본수상이 8일 나가사끼 (장기) 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중공방문 전까지 교과서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은 두 국장을 보내놓고 중공을 겨냥해 던진 지원사격의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의 중공태도로 보아 이런 방식의 해결에 중공측이 동의할 것으로 본다는 것은 너무 낙관적인 견해인 것 같다.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 그것을 해결하려는 일본의 태도를 한국이나 중공 어느쪽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외교 소식통들은 내다보고있다.【동경=신성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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