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북괴승인 일단은 뒷전에-셰송 방한 이후의 한-불 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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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불 외상회담은 우선 프랑스가 조만간 북한을 승인할 것이라는 그동안의 우려를 상당히 씻어주게 된 것 같다.「클로드·셰송」외상은 한국도착 즉시 빗발친 취재진의 질문에『북한승인문제에 관해 프랑스정부는 어떤 결점도 내린 바 없다』고 해명했다. 이러한 톤은 외상회담과 이한기자회견 등에서 계속 유지되거나 보다 더 분명하게 천명됐다.
외상회담이 끝난 뒤 배석했던 외무부 당국자는『북한승인문제는 공식회담의 의제로 올려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양국간에 공식으로 제기된 적이 없는 문제를 외상회담에서 특별히 거론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 프랑스의 태도였다』고 전했다. 외상회담에서「셰송」외상은 대신『한반도문제와 관련, 전통 우방인 프랑스가 한국민의 안보에 관한 기본권리를 보장할 책임이 있다』고 했고 이어, 이한기자회견에서도『한국의 안보안정을 저해하는 프랑스의 결정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앞으로도
한국의 안보안정을 돕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셰송」외상의 이러한 말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최소한 북한승인이 기정사실로 통보되지는 않았으며 프랑스가 가까운 장래에 북한승인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프랑스의 북한승인은 아직 기본원칙의 선에서 맴돌고 있으며『북한을 승인하기에 앞서 한국의 형편을 먼저 알아보아야겠다』는 것이「셰송」외상의 이번 방한 목적인 것 같다.
프랑스의「먼저 알아볼 일」이란 대체로 한국이 프랑스의 북한승인을 현시점에서 확고하게 불가능하게 하는 명분과 수단을 함께 갖추고 있느냐는 점인 것 같다. 이 경우 △한-북 간의 기존우호관계 △한반도의 안보실상 △북한승인을 반대하는 한국민의 강한 의지 등이 명분에 해당된다면 △금후의 한-불 교역전망 △대한경협 진출가능성 △이에 대한 한국정부의 언질 등은 그 수단이랄 수 있다.
사실 만 40시간이 채 못되는 짧은 한국체류기간 중「셰송」외상이 털어놓거나 시사한 여러 사실로 미루어 그의 방한은 북한승인문제 등 정치적 한-불 관계보다는 증대일로의 교역과 경협 등 경제적 한-불 관계에 보다 더 초점을 맞춘 듯한 인상이었다.「셰송」외상도 자신의 중요한 방한목적이『9월로 예정된「미셸·조베르」대외무역상의 방한에 앞서 경협확대를 위한 토대를 다지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서울∼대전간 고속전철 (40억 달러) △올림픽 통신위성 (8억 달러) △LNG터미널 (3억 6천만 달러) △부산 지하철 (1억 들러) 등과 에어버스 판매 등이 프랑스의 구체적인 관심대상이라고 서슴없이 밝혔다.
「셰송」외상은『이러한 프로젝트는 프랑스가 적어도 독자적인 기술을 축적하고 있거나 경쟁국보다 우위의 기술을 갖고있는 것들이므로 한국이 보다「자주적」인 판단을 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셰송」외상은 이에 덧붙여『프랑스와의 경협이 EC (구주공동체) 전체와의 협력이라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이범석 장관에게 매달 열리는 EC외상회담에 초청되도록 주선하겠다고도 제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협에 대한 프랑스의 이같은 강한 관심은『경협을 정치적 압력화 하지 않을 것』이라는「셰송」의장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승인문제에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다.
소련과 중공이 대한관계를 개선하지 않는 현시점에서 프랑스의 북한승인은 한반도의 평화유지 및 힘의 균형을 깨므로 프랑스의 일방적인 북한승인은 기존의 한-불 우호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긴밀한 경협도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한국의 입장이다.
프랑스가 이러한 한국의 배수진적 입장을 어느 만큼 수용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최소한 긍정적인 인식은 표명한 듯하다. 문제는 프랑스가 앞으로 그들의 북한승인이란 기본전제와 대한경협진출이란 실질명제를 어떻게 저울질하느냐에 달려있고 그러한 평가는「조베르」대외무역상의 9월 방한과「미테랑」대통령의 내년 초 방한시점에서 보다 뚜렷한 윤곽으로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류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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