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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상승과 경제 펀더멘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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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종합주가지수가 1100선을 넘어 사상 최고치(1138) 경신을 눈앞에 두고 있다. 최근의 주가 상승세는 그야말로 거침이 없는 모습이다. '수급이 재료를 앞선다'는 증시 격언을 입증이라도 하듯 돈이 밀어 올리는 금융장세에 웬만한 악재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증시 일각에서는 "하반기 중 1200 내지 1300 돌파도 가능하다"는 장밋빛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연기금, 적립식 펀드 등 기관 주도의 장세가 펼쳐지고 있어 과거 개인 중심의 널뛰기 장세와는 증시 체질이 다르다는 게 그런 낙관론의 주요 근거다. 실제로 경제 고성장을 뒷심으로 했던 과거 세 차례의 1000포인트 돌파는 2000년 초의 IT 붐을 제외하고는 개인이 주도한 것이었다.

이에 비해 현재의 강세장은 경기저점에서 기관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르다고 증권 관계자들은 말한다. 더구나 최근의 주가 상승은 배럴당 60달러를 넘는 국제 유가, 런던 테러, 국내 기업들의 2분기 실적 발표, 한국은행의 경제성장률 하향조정 등 여러 가지 악재 속에서도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 참가자들의 추가 상승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

그렇다면 주가는 앞으로 계속 오를 것인가. 적어도 국제 시장 여건과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장기 지속적인 상승은 어렵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아시아와 북미를 중심으로 원유 소비 증가율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산유국들의 제한된 생산 능력을 감안할 때 유가가 앞으로 더 오를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유가 안정이 경제성장의 필수 요건인 우리나라 사정을 감안할 때 주가 상승의 걸림돌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국내적으로도 주가 오름세에 장애가 될 만한 문제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우선 가계 부채 문제로 인한 내수 부진이 주식시장의 도약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 주식투자의 가장 큰 메리트 중 하나인 배당을 보자. 최근 기업 수익성과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커지면서 우리 기업들의 평균적인 배당 성향(배당금을 당기순이익으로 나눈 수치)도 높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미국(37.6), 일본(36.8), 영국(60.1)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크게 낮은 수준(25.4)이다. 불합리한 기업 지배구조와 불투명한 경영 및 회계, 그리고 아직도 근절되지 않고 있는 주식시장의 불공정거래 행위 등도 외국인들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 국민들의 주식에 대한 홀대도 주가의 레벨 업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가계자산 중 금융자산과 실물자산의 비중은 우리나라의 경우 2:8 정도다. 전체 자산 중 금융자산 비중이 일본(3:7)이나 미국(7:3)에 비해 턱없이 낮다. 가계가 선진국에 비해 주식투자를 꺼리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최근 대세 상승론이 확산하면서 넘치는 유동성과 쏟아지는 호재들이 지정학적 위험 등 악재들을 덮어버리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투자자들은 국내외 경제환경을 바로 살피는 지혜가 필요하다. 펀더멘털에 기초하지 않은 상승은 자칫 엄청난 후유증을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증시의 최근 상승 요인 중 하나가 세계경제의 지역적 불균형 속에서 나타난 우리나라로의 일시적 국제 유동성 유입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자금 이동은 상대적이고, 단기적이라는 점에서 언제든지 한국 증시를 이탈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외국인들이 빠져나간 공백을 기관과 개인이 메우는 과정에서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국제금융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주가 폭락의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전가된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증시격언을 한번 더 되살려 보아야 할 시점이다.

이지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조정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