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걷어낸 음대 실기 … 24곳 중 17곳 직접 보고 채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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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자녀가 서울의 한 사립대 음대 실기면접을 치른 A씨(44·여)는 시험장 풍경이 매우 낯설었다. 피아노를 전공한 그는 자신의 대학 생활을 떠올리며 실기장에 블라인드가 있을 걸로 생각했다. “1990년대는 모두 블라인드 면접이었죠. 그래야 입시 부정이 안 생긴다고 했거든요.” 그러나 A씨가 가본 두 군데 대학 모두 블라인드가 없었다. 그는 “아무리 면접이 공정하다 해도 블라인드가 없으면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991년 서울대 음대 입시비리 사건을 계기로 전국에 확산됐던 블라인드 면접이 상당수 대학에서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블라인드를 설치하면 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거나 연주자 자세와 표정 등을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서울대 등 일부 대학은 여전히 공정성을 우선해 블라인드 면접을 시행하고 있다. 수험생과 학부모 사이에선 여전히 블라인드 없는 면접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윤재옥 새누리당 의원이 교육부를 통해 수도권 소재 36개 음대를 조사했다. 조사에 응한 24개 음대의 실기고사 현황을 본지가 19일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연세대·중앙대·한양대 등 17개 음대는 블라인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반면 서울대와 가천대·경희대·국민대·그리스도대·수원대·협성대 등 7곳은 블라인드 면접을 했다.

 블라인드 면접 도입은 91년 서울대 입시비리 사건 이후다. 당시 목관악기 부문 정원(8명)의 절반이 부정 합격했다. 교수·학부모 9명이 구속됐고 이듬해부터 블라인드가 설치됐다. 특히 99년 연세대 음대 입시에서 심사위원 17명 중 7명이 금품을 받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실기면접이 더욱 엄격해졌다. 이종기 예원학교 교장은 “90년대 입시비리 이후 많은 대학이 블라인드 면접을 했다”며 “오해와 루머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블라인드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서울의 다른 음대 교수는 “마음만 먹으면 소리만 듣고도 부정이 가능하다”며 “블라인드 쳐놓고 음악 실기를 보는 나라는 우리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험생과 학부모는 불안하다. 음대 입시생 B양(18·고3)은 “대학마다 실기면접 방식이 다르면 뭐가 공정하고 효율적인지 기준이 없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음대생 C씨(23·여)는 “‘잘 봐달라’는 차원에서 입시 전 해당 대학 교수로부터 레슨을 받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이지영 서울대 음대 부학장은 “연주 외적 부분을 평가하지 못하는 한계는 있다”면서도 “블라인드 면접을 유지하는 이유는 공정성이 평가의 최우선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석만·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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