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즐겨읽기] "신화는 모순이 충돌하는 큰 놀이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다훈이의 세계 신화 여행 정다훈 지음 휴머니스트, 368쪽, 1만 3000원

저자가 어릴 적 어머니가 즐겨듣던 그리스 출신 여가수 나나 무스쿠리의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그 막연한 기억만으로 스페인 그라나다까지 찾아가는 낭만적인 여대생. 그가 작심한 채 신화를 찾는 여행을 떠났다. "노아의 방주.일리아드 등 고전 이야기가 6000년 전 수메르 문명의 '길가메쉬 서사시'에 다 들어있더라. 그래! 세계각국에 퍼져있는 신화의 원형을 좇아 떠나보자"

◆ 신화 속 현장을 찾아라=이 책은 정다훈(21.서강대 중국문화학 3)이 지난 해 여름 메소포타미아 지역 아나톨리아, 그리스 이오니아, 스페인 안달루시아, 아프리카 북부 등 4개 문화권 23개 도시의 신화현장을 누비며 얻어낸 열매. 새내기 대학생 저자라고 가볍게 보면 큰 코 다친다. 의젓한 인문학적 상상력을 가진 그에게 신화란 '인류가 가진 꿈의 집'이고 역사와 감정이 충돌하는 최고의 놀이터란다.

이제 우리 대학생들도 이 정도로 강한 '문화 체력'을 가졌구나 하고 흠칫 놀랄만한 책이 이 신간인데, 그가 뒤져본 '꿈의 집'은 대단한 규모다. 6000여년의 시간과 동서양 대륙을 종횡무진하며 무수한 신들을 불러낸다. 저자가 여러 문명 사이의 신화적 공통성을 통해 얻은 중간 결론도 경청할 만하다. '자민족 중심주의의 위험성'과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명제 말이다.

예를 들어 폐허가 된 터키 아나톨리아에 선 저자는 수천명의 신과 함께 했을 히타이트인이 부럽다. 다음은 이어지는 젊은 대학생 저자의 세상 읽기다. "적어도 그들은 신화 속 이야기가 진실이냐 허구이냐를 따지지는 않았을 테지. 그들 앞에선 헌금으로 신앙심을 따지는 한국 교회가, 공자의 사상은 죽어버린 관광지 공자묘가, 성전을 앞세워 민간인을 살상하는 이슬람이 공존하는 현대가 초라해보이겠지."

◆ '글쓰기'는 나의 운명? =다훈씨는 중2때부터 여행을 시작한 베테랑이자 이미 중견 저자. 2001년 중국 베이징대부고 재학 중 아버지와 중국을 여행하며 '클릭! 차이나', '지금 중국이라 하셨나요? '(이상 씨엘)를 출간했다. 올해 중국 칭화대 교환학생으로 선발됐다. 동생 다영(20.고려대 행정학과 2)씨와 이슬람을 여행하면서 함께 지은 책 '다영이의 이슬람여행'(창비)은 2만여부까지 팔렸으며, 그 덕에 다영은 특차로 입학했다. 다훈과 다영을 키운 건 8할이 아버지 정인화(52.관동대 교수)씨. '지도교수이자 여행파트너'인 아버지는 방학을 이용해 중학교 딸을 여행 보냈다. 물론 학원 따위는 무시했다.

여행마다 트렁크에 싸가는 20여권 신화 도서들도 아버지의 추천물이다. 추천도서에는 켐벨의 '신의 가면',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등이 포함됐다. 아버지의 철학은 이미 딸에게 '내공'으로 자리잡았나 보다. "어쩔 수 없이 자기의 꿈을 가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를 찾아 헤매는 게 내 행복이다. 이제 나는 다시 길을 물어 헤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원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