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우 박사의 건강비타민] 찬바람 불면 늘어나는 안면 마비 … 바이러스 감염 ‘벨 마비’ 가능성 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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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장진우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

우모(53·대구)씨는 심하게 감기를 앓고 난 뒤 이를 닦고 물을 머금는 순간 입에서 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거울을 보니 오른쪽 입이 돌아가 얼굴이 일그러져 있고 입과 눈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김모(51·인천)씨는 2년 전부터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른쪽 눈 주위가 파르르 떨리는 증상이 나타났다. 점차 강도와 횟수가 심해지고 입까지 실룩거리는 증상이 나타났다. 나중에는 목에 경련이 생겼다. 병원에서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을 해 보니 뇌혈관 압박에 의한 안면 경련증이었다. 김씨는 미세혈관 감압수술을 받고 완쾌됐다. 머리를 열어서 뇌혈관과 신경 사이에 인체에 무해한 완충 물질을 넣는 수술이다.

 두 사람의 질환은 안면신경장애다. 연중 발생하지만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요즘 같은 시기에 더 많이 생긴다. 대개 초기 증세가 있어도 ‘피곤해서 그렇겠지’라고 무시하거나, 어떻게 할지 잘 몰라 민간요법에 의존하다 병을 키운다. 두 사람의 초기 증상이 비슷하지만 원인과 진단, 치료 과정은 완전히 다르다. 우씨의 증세는 전형적인 벨 마비(Bell’s palsy)다. 김씨는 반측성 안면경련이라는 다소 생소한 질환이다. 두 가지를 통틀어 안면신경장애라고 한다.

 벨 마비는 헤르페스 같은 바이러스나 원인 모를 염증 균이 안면 신경에 침범해 발생한다. 이런 바이러스는 평소에 우리 몸속에 들어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지면 문제를 야기한다. 흔히 찬 바닥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면 입이 돌아간다고들 한다. 입이 돌아가면 ‘구안와사’에 걸렸다고 한다. 찬 데서 잠을 자서 안면 마비가 온 게 아니라 바이러스에 의한 벨 마비의 가능성이 가장 크다.

 벨 마비가 오면 눈물이 갑자기 증가하거나 감소한다. 음식 맛을 잘 느끼지 못하고 한쪽 귀가 너무 크게 들리거나 식사할 때 음식을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흘리기도 한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빨리 신경외과 전문의를 찾아 진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 간단한 신경학적 검사나 MRI 등의 영상 검사로 쉽게 진단하며 약물 치료로 해결된다. 주의할 게 있다. 뇌졸중 때문에 안면 마비가 오기도 하는데 벨 마비와 구분해야 한다. 뇌졸중에 의한 마비는 발생 당일 가장 증세가 심하다. 게다가 얼굴에만 마비가 오는 게 아니라 팔·다리까지 마비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벨 마비는 증상이 나타난 뒤 점점 심해져 사흘째가 가장 심하고 일주일간 지속된다.

 반측(半側)성 안면 경련은 얼굴 절반에 경련이 생기는 병이다. 김씨처럼 뇌혈관이 신경을 압박하지 않게 해야 한다. 뇌수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벨 마비보다 치료법이 더 어렵다. 세브란스병원이 1987년 이후 지금까지 약 3000명에게 미세혈관 감압수술을 했다. 그 결과 90% 이상이 완치됐다.

 안면신경 장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평소 건강상태를 잘 유지해야 한다. 면역력이 약해지면 바이러스 감염이 더 쉬워져 벨 마비에 노출된다. 과로를 피하고 충분히 휴식해야 한다. 스트레스 관리도 중요하다. 반측성 안면 경련은 스트레스나 피로 등이 심장 박동에 영향을 줘 신경 압박을 심화시킬 수 있어 휴식과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하다. 흡연과 음주는 모든 혈관질환의 요인이기 때문에 피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뇌는 우리 몸에서 가장 민감한 부위다. 작은 이상이 생겨도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안면 마비나 경련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장진우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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