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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무엇을 위한 대연정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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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통령의 연정 구상이 다시금 정치권을 흔들고 있다. 이번에는 한나라당을 지목한 대연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했고, 한나라당을 비롯한 야 3당에서는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지만, 중부권 신당을 준비하는 정진석 의원이 공론장에서의 논의를 촉구하는 등 정치적 파장이 적지 않다. 도대체 연정이 무엇이기에 대통령과 여당은 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야당은 그에 대해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

원래 '연정'이란 '연립정부'를 의미하며, 이는 내각제에서 나타나는 정치 형태의 하나다. 내각제에서는 의회의 다수파가 내각을 구성하는 것이 원칙이고, 하나의 정당이 과반수를 형성하지 못할 경우 여러 정당이 연립해 내각을 구성하게 되는데 이를 연정이라 하는 것이다. 그중에서 제1당이 제2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 압도적인 다수를 형성하는 것을 대연정이라 하고, 제1당이 제3당이나 제4당과 연립하여 과반수를 확보하는 것을 소연정이라고 한다.

내각제에서는 과반수를 차지하는 정당이 없을 경우에 필연적으로 연정이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대통령제에서는 그렇지 않다. 대통령제는 내각제와 달리 의회와 대통령이 각기 별개의 선거에 의해 선출되며, 이를 통해 의회와 정부가 각기 독립된 정당성을 갖게 된다.

따라서 의회와 정부는 서로를 견제하는 가운데 각기 입법과 집행의 독자적 활동에 대한 책임을 '국민에 대해서' 지며, 의회와 정부가 서로에 대해 직접 책임지지 않는다. 의원내각제와는 달리 정부의 의회해산권이나 의회의 정부에 대한 불신임권이 인정되지 않는 것이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내각제의 경우와 달리 연정의 필요성 자체가 그렇게 절박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대통령이 주장하는 야당에의 권력 이양이 위헌 소지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권한은 국민이 위임한 것이고, 국민의 동의 없이 대통령이 임의로 제3자에게 이양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대통령이 임명한 국무총리나 장관이 대통령의 동의 없이 자신의 권한을 제3자에게 이양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겠는가?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게 위임한 것이며, 이를 제3자가 대신 행사하는 것은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대연정을 통해 거대 정치세력을 탄생시키는 것도 문제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외교문제 등에 대한 일시적이고 개별적인 정책공조는 몰라도 현재 노무현 대통령이 주장하는 방식의 연정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양당제 국가인 미국에서 연정을 하게 될 경우에는 모든 권력이 집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권력분립에 반하고, 법치주의에 반하며, 나아가 국가권력의 민주적 정당성과 관련해서도 많은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양당제가 아니다. 하지만 대연정이란 양당제에서의 연정과 사실상 다를 바가 없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연정을 통해 하나의 정치세력이 된다면 국회의석의 90%를 지배하는 독점적 정치세력이 된다. 과연 이러한 거대 권력의 독주를 국민이 원하고 있을까?

노 대통령이 이른바 "내각제 수준의 권한 이양"을 내세우며 연정을 촉구하는 것은 그만큼 정치적 상황이 어렵고, 국회의 협조가 절실하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은 곤란하다.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상대방은 국회가 아니라 국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재 여당이 비록 과반의석을 채우지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국회 내에서 확실한 제1당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국회의 견제를 피하고 정책집행의 편의성만을 의식하여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면, 그것은 비 새는 지붕을 막기 위해 대들보를 뽑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