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가운고 영어듣기 시험 방송 사고

중앙일보

입력

지난 13일 경기도 남양주 가운고에서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재수생 나모(22ㆍ여)씨는 영어영역 듣기 평가 시간에 황당한 일을 겪었다. 옆 반에서 듣기 평가를 시작하는 안내방송이 나오는데도 나씨의 고사장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수험생들이 “어떻게 된 일이냐”며 웅성거리는 사이 3분 30초 정도 시간이 흘렀고 갑자기 듣기평가 3번 문항이 방송되자 나씨는 허둥지둥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나씨는 “감독관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시험지도 펼치지 못한 채 기다리고 있다가 급히 3번 문항부터 풀기 시작했는데 집중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후 듣기평가가 끝나고 10분쯤 지나자 나씨의 고사장에 새로운 감독관이 들어왔다. 그는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 풀이 시간을 4분 더 주겠다”며 휴대용 CD 플레이어로 듣기평가 1~2번 문항을 틀어줬다. 나씨는 “영어영역은 시간 관리가 중요해 평소 듣기ㆍ독해 순으로 순서를 정해놓고 푸는 훈련을 하는데 학교 측 실수로 문제풀이 순서가 뒤엉키면서 당황한 나머지 실수를 했다”며 “일단 눈앞에 닥친 입시를 준비하고 있지만 부당한 피해를 입어 억울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가운고 관계자는 “당일 2개 고사장에서 영어 듣기 평가 1~2번 방송이 나오지 않은 건 사실”이라며 사고를 인정했다. 하지만 “수능 시험관리 메뉴얼대로 대응했고 문제풀이 시간도 4분 더 줬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도 “방송사고 발생 시 교실에 있던 감독관이 교장ㆍ교감과 협의해 적절한 조치를 내리라는 평가원의 지침을 충실히 따랐다”며 “시험장 책임자가 상황을 판단해 재량으로 즉각 조치하라는 건 메뉴얼에도 적시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험생들은 “독해 문제가 끝나기도 전에 불쑥 교실에 들어와 듣기 문제를 틀어준 건 적절한 대응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나씨는 “놀란 마음을 잠재우고 난이도가 높은 독해 빈칸 추론 문제를 풀고 있었는데 갑자기 멈추고 다시 듣기를 하느라 시간을 허비했다”며 “어떤 순간에도 침착하게 문제를 푸는 게 수험생의 몫이지만 모두 내 잘못이라고 하기엔 지난 1년의 노력이 허무하다”고 말했다.

메뉴얼에도 해석의 여지가 있다. 교육부가 개별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낸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험관리 세부시행계획’에선 ‘듣기평가가 제 시간에 시작되지 못하거나 방송이 중단된 경우 독해 문항을 먼저 응시토록 한 후 듣기평가를 실시’하도록 돼 있다. 이에 따르면 독해 문항이 끝난 후 방송되지 못한 나머지 듣기 방송을 들려주는 것이 적합하다. 하지만 ‘시험장 책임자가 해당 부분 듣기평가 CD 재방송 여부를 적절히 판단해 처리하라’는 지침도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지침에 따르면 감독관이 어떠한 조치를 취하더라도 메뉴얼을 어긴 건 아니게 된다는 지적이다.

한편 교육과정평가원 관계자는 “방송사고가 발생하면 각 시·도교육청이 즉각 메뉴얼대로 대응하고 문제가 있었던 CD는 평가원으로 전달돼 불량 여부를 진단하도록 돼 있는데, 올해엔 특별히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평가원이 배부하는 CD가 모든 학교의 오디오 상황에 맞을 수는 없기 때문에 사고의 소지는 항상 있지만 적절히 대응했고 평가원에서 CD를 제출하라는 지시가 없어 따로 보고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신진 기자 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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