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애씨 극장 가다] 저녁 7시30분 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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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깍똑깍.' 벽시계를 쳐다본다. 벌써 오후 6시50분. 초조하다. 회의가 왜 이리 길어지지…. 맘이 급해진다. 팀장 얼굴을 흘끗 본다. 얘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에잇, 모르겠다. "저,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요." 따가운 눈총을 뒤로 하고 잽싸게 달려나간다. 택시를 잡아탄다. 어라, 차가 꿈쩍도 안하네. 10분 남았는데. 밥 먹는 건 포기해야겠다. 그나저나 화장실은 다녀올 수 있으려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봤을 초치기. 공연보러 가는 날의 풍경이다. 눈치보며 퇴근하고, 교통체증에 마음 졸이고, 고상하게 밥 먹는 건 애초부터 포기해야 한다. 극장 문까지 헉헉대며 달려가 자리에 앉자마자 드는 의문, "공연은 왜 꼭 7시30분에 시작하는 거야?"

일본의 공연 시작 시간은 천차만별이다. 오후 6시30분, 7시, 7시30분, 8시 등 작품마다 다르다. 심지어 6시15분도 있다. 일본 공연계 관계자는 "직장인들이 5시쯤 퇴근하기 때문에 여유를 갖고 공연을 볼 수 있다"며 "공연의 길이에 따라 자유롭게 시작 시간을 정한다"고 귀띔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대한민국의 평일 공연은 '오후 7시30분'에 시작된다. 작정이라도 한듯 똑같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공연이 오후 8시에 시작하는 것과 비교된다. 예술의전당 고희경 공연기획팀장은 이 현상에 대해 "외국인들은 밤 12시 넘어 공연이 끝나더라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우리나라 관객들은 11시만 넘어도 불안해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극장이 조금 이른 듯하지만 7시30분을 고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최근 몇년 새 오후 8시 공연이 조금씩 늘고 있다는 것이다.

30분 차이가 공연 관람의 질을 결정한다. 직장인에게 오후 7시30분 공연은 부담스럽다.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30분을 늦춘 8시 공연은 여유롭다. 든든하게 밥먹고, 로비에서 분위기 좀 익히고, 객석에 앉아 팸플릿을 훑어볼 수 있다. 공연을 기획하시는 분들, 극장장님들, 직장인들을 위해서 30분만 늦춰주시면 안되나요? 오랜만에 비싼 돈 내고 공연보러 왔는데 그 정도 배려는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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