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존경하는 글을 2.2% 뿐|아동 문학연구소 도시아동 작문서 나타난 부모관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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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옛 경전에 이르기를 「신체오불 수지부모」라 했다. 머리 한 올에서 피부전체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몸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곧 당시 자녀들이 지니고 있던 부모관은 절대적인 것이었음을 일러주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 어린이, 특히 대도시의 어린이들이 지니고 있는 부모관은 어떤 것일까.
한국아동문학회주최로 31일부터 8월2일까지 강원도 원주 귀룡사에서 열리는 제12회 아동문학세미나에서는 도시 아동들의 작문을 통해 나타난 부모관이 소개될 예정이어서 관심을 끈다.
엄기원씨(한국아동문학연구소장)가 금년 5월8일 어버이날을 맞아 서울 부산 대구 광주 전주 대전 등 6개 도시에서 열린 새싹회 주최 전국어린이백일장에 참가한 작문 중 낙선작품 2천l백23편을 대상으로 내용을 분석한 『작문에 나타난 도시어린이들의 부모관』을 요약, 소개한다.
전체작품 중 33%가 부모의 은혜와 부모에 대한 자랑을 쓰고 있으나, 『낳아주고 길러주셔서 감사하다』는 식의 상식적이고 고정관념을 적은 글이 대부분이다.
다음으로 많은 것은 부모의 행동에 대해 쓴 글(12.3%)로 도시아동들이 부모의 행동에 대해 민감하고 비판적임을 보여준다.
『엄마하고 차를 탔다. 그런데 차비를 낼 때 내 차비를 안내서 안내원이 차비를 내라고 했다. 우리 엄마는 보지도 않고 차에서 내려버렸다. 나는 그래서 엄마와 같이 다니기가 싫다』(대전 4년생)
『어머니보다 인자하신 아빠! 우리아빠는 첫째, 남자 같지 않다. 그리고 둘째는 너무 웃기는 점이 많다. 자연농원에 갔을 때 멋진 사자를 보자 사자에 대해 자세히도 모르면서 아는 체하며 설명하는 것이 아주 우스웠다. 그리고 토끼, 원숭이흉내를 내는 아빠!』(대구 6년생) 등 아동들은 예리한 관찰력과 비판력을 갖고 있어 부모의 행동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큼을 보여준다.
부모의 건강에 대한 글도 2백20편으로 10.1%를 차지하고 있는데 아동들은 평소 부모의 건강에 대해 걱정하기보다는 현재 부모가 앓고 있는 사실을 기록하고 그로 인해 자기와 가족들의 생활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골자를 이루고 있다.
『우리엄마는 벌써 자궁수술을 세 번이나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늘 아랫배가 아파서 걱정을 하신답니다. 나는 여자들에게 자궁이라는 게 없었으면 좋겠습니다.』(광주 5년생)
『아버지는 아주 술고래입니다. 날마다 아침이면 「여보, 속이 쓰려 못 견디겠소」 그러면 엄마는 구수하게 라면 국을 끓여드립니다. 그렇게 속이 아픈데 왜 날마다 술을 드시는지 모르겠어요.』(서울 4년생)
작문 중에서는 특히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건강문제가 많이 거론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어머니의 질병은 허릿병·신경질환·위장병·자궁질환·허약·비만 등이며 아버지는 혈압, 술로 인한 위장장애, 교통사고 등이 주로 나타나고 있다.
부모의 직업·직장에 대한 글도 6.6%나 되는데 대부분 불만과 수치심을 표현하고 있다.
『지금 아버지께서는 목수 일을 하신다. 작년까지만 해도 큰 사업을 하셨는데 그만 실패를 하셔서 집안의 돈을 다 썼기 때문에 우리 집은 자꾸 가난해져갔다.
큰 사업을 하고 사장이던 아버지가 망하여 목수 일을 한다는 것을 친구들이 눈치챌까봐 걱정이다.』 (대구 6년생) 등 직업에 대한 귀천의식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아빠의 직업에 떳떳한 자부심을 갖지 못해 자신의 생활에 위축감을 가져오는 것으로 풀이된다.
부모의 꾸중에 대한 작문도 4.4%를 차지하고 있는데 대개가 학업에 관한 것으로 바른 생활·말씨 등 인간교육에 대한 것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부모에 대한 불만도 3.6%로 지나친 공부강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가정불화, 편애, 함께 놀아주지 않는 것이 주요 불만의 요소로 나타나고 있다.
가정불화에 대한 글만도 2.7%나 되는데 아동들은 한결같이 공포 속에서 생활이 불안하고 부모를 원망하는 내용을 적고 있다.
『아빠와 엄마는 싸움을 자주 하셔서 두 분의 사이가 나빠져 있다.…엄마가 난소수술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것이다.
나는 그 나쁜 소식을 받고도 마음이 아프다거나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기뻤다. 엄마가 아파서 기쁜 게 아니라, 엄마가 집에 안 계시기 때문에 내 자유대로 살수 있고 엄마와 아빠가 부부싸움 하는 것을 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대전 5년생)
반면 부모를 존경하는 글은 48명으로 전체의 2.2%에 불과하다. 부모를 존경하는 요인의 공통점은 부모의 행동이나 말씨, 마음가짐이 자녀에게 모범이 되고있다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참 훌륭한 점이 많다. 나와 동생이 이따금 싸워도 꾸중을 하지 않고 조용히 타이르신다. 그럴 때 나는 어머니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나도 커서 우리 어머니 같은 여자가 되고싶다.』(광주 5년생)
이밖에 사별 또는 별거로 인해 부모를 그리워하는 글(1.6%), 부모의 외모·인물·습관에 대한 글(3.2%), 부모의 취미에 대한 글(0.7%), 부모의 말씨·교양에 관한 글(1.1%) 등이 있다.
엄씨는 이상의 분석을 통해 ▲부모를 존경해야한다는 윤리적 고정관념의 희박 ▲부모와 자녀간의 대화단절 ▲아동들은 부모에게 정신적 참된 애정을 요구 ▲도시아동들은 부모에 대해 이기적이고 욕구 불만적 ▲도시의 학부모들은 자녀를 칭찬·격려하는데 인색한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고 『오늘의 도시아동들은 부모를 절대적인 존경인물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예리한 눈과 섬세한 마음으로 극히 비판적인 대상으로 삼고 있으므로 부모의 바른 생활과 자녀에게 행하는 사랑의 실천만이 자녀 가정교육의 열쇠가 된다』고 결론지었다. <홍은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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