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 인사 30년 … “공공개혁, 국민에 대한 예의서 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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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면(62) 초대 인사혁신처장 내정자는 지난달 31일 책을 냈다. 『직립보행-인턴에서 100% 취업 성공하기』다. 이 내정자는 서문에 “초일류 기업은 기본을 중시한다. 글로벌화의 기본은 예절, 규범, 약속이다”라고 썼다. 삼성전자와 삼성코닝, 삼성SDS에서 30년 넘게 인사·노무 업무를 도맡아 하면서 그가 가장 중하게 여긴 것도 예의다. 사회 구성원은 물론 각 부문이 예의를 갖춰야 기업과 사회, 나아가 국가가 직립보행한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은 기업 간 경쟁에서도 견지됐다. 벤처 열풍이 불던 2000년대 초 기업 간 인재 쟁탈전이 치열할 때 그는 우수인재 확보와 유지의 기준을 업계에 제시하고 대타협을 이끌어냈다. 일정 기간 동종 업계·동일 업무 취업을 제한하거나, 이동은 자유롭게 하더라도 기술 유출은 엄격히 금지하자는 요지다. 이 내정자는 평소 “대기업이 중소기업 영역을 침범하면 안 된다. 그래서는 히든 챔피언(강한 중소기업)을 키울 수 없다. 청년들이 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리게 하려면 히든 챔피언이 많아야 한다”고 말해왔다. 공정거래도 예의라는 얘기다. 그 또한 삼성광통신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빵집 프랜차이즈의 횡포로 마음고생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인사팀장으로 재직하며 조직을 재편, 애니콜 신화를 일궜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그룹 관계자는 “현재 인사 토대는 이 내정자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인사조직연구회’를 직접 만들고 한국노사관계학회 부회장을 지내며 트렌드를 공부했다. 2011년엔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르퀴즈 후즈 후(Marquis Whos Who)’에 ‘인사전문가’로 등재됐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인사와 관련한 경험과 전문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조직관리 능력과 추진력을 겸비했다”며 “민간기업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에서 공직인사 혁신을 이끌 적임자로 기대해 발탁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내정자는 “공공부문 개혁도 국민에 대한 예의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이 내정자를 발탁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의 공직사회 개혁 의지도 강하게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관피아’ 문제가 불거지자 공직 개혁의 핵심으로 인사혁신처 신설을 제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런 조직을 공무원에게 맡길 수 없다는 박 대통령의 생각이 담겼다”고 전했다. ‘셀프 개혁’은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는 설명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의 주무부처가 인사혁신처란 점도 감안한 조치라고 한다. 이 내정자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서울 중동고 동창이다. 하지만 학년이 달라 서로 면식은 없다고 한다.

 이 내정자는 청년 문제에 관심이 많다. 2009년 1월부터 중앙일보 ‘취업과 창업’ 섹션의 자문위원으로 1년 가까이 활동했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면 늘 캐주얼 차림인 그가 빼놓지 않는 말이 있다. “공무원이나 공기업에 대졸자들이 몰리는 것이 안타깝다. 안정보다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가져야 한다.” 2013년에는 자비를 털어 ‘청년 we함’이란 봉사단체를 만들어 취업을 돕고 있다. 18일 오후 아주대 강의를 마치고 나온 이 내정자는 “신나는 공무원, 친근한 공무원,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공직사회를 만드는 데 밀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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