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경제] 외국인이 팔면 주가는 왜 떨어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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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주식 투자를 하는 부모님에게서 이런 불평을 들어본 적 없나요. "외국인들이 주식을 너무 많이 팔아 주가가 계속 떨어져"라고. 실제로 지난해부터 외국인들이 한국 기업들의 주식을 많이 팔았어요.

올해도 1월부터 4월까지 외국인들이 사들인 주식보다 판 주식이 훨씬 많았답니다. 이 기간 중 주가도 많이 떨어졌고요. 그래서 이런 불평이 나오는 것이죠.

물론 외국인들이 주식을 많이 팔았기 때문에 주가가 떨어졌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어요. 평소 하루 10만원어치의 주식을 사던 외국인들이 어느날 1백만원어치를 샀는데, 국내 투자자들이 그보다 많은 2백만원어치를 팔았다면 주가는 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외국인이 주식을 사면(매수) 주가가 오르고, 팔면(매도) 주가가 내리는 것처럼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건 기업들의 주식을 사고 파는 증권시장(증시)에서 외국인들의 힘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증시에서 주식을 사고 팔 수 있게 된 것은 12년 전인 1992년 1월부터예요. 그때는 외국인들이 특정 종목, 예를 들면 삼성전자의 주식을 10% 이상 가질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점점 외국인들이 주식을 살 수 있는 한도가 늘어나 98년 5월부터는 한 회사의 주식 전부를 외국인들이 가질 수 있게 됐어요. 이를 '증권시장의 완전 개방'이라고 불러요.

하지만 일부 종목에 대해서는 아직도 외국인들이 주식을 살 수 있는 한도를 제한하고 있어요. 전력.가스.통신 등 소위 '기간산업'이라 불리는 업종에 대해서는 외국인들의 투자 한도를 30~49.99%로 제한하고 있답니다.

방송사의 주식은 아예 한 주도 가지지 못하게 하고 있죠. 기간산업을 하는 회사를 외국인이 지배할 경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국인이 한국 증시에 투자하려면 금융감독원이란 곳에 신고를 해야 하는데 3월 말 기준으로 외국인 투자자는 1만4천3백96명이에요.

이처럼 증시 개방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이 급격히 늘었지만 수백만명에 달하는 국내 투자자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지요. 그러나 이렇게 적은 외국인들이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우리나라 기업들의 전체 주식 중 35.1%를 가지고 있답니다.

주식 세 개 중 하나는 외국인 소유인 셈이죠. 이들이 가지고 있는 주식을 돈으로 바꾸면 77조원에 해당할 정도로 엄청난 금액이에요.

이렇게 많은 주식을 가지고 있다 보니 외국인들의 영향력도 점점 커지고 있지요.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주식을 무작정 따라서 사는 이들도 생겨나고, 외국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기업설명회를 개최하는 기업들도 점점 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에요.

걱정하는 사람도 없지 않답니다. 싼값에 사들인 주식을 비싸게 팔아 이익을 많이 남긴 뒤 한국을 떠나버릴 수도 있고, 국내기업의 주인이 외국인으로 바뀔 수도 있어요. 얼마 전 소버린이라는 외국 투자회사가 SK㈜의 주식을 많이 사들여 이 회사의 최대주주가 되기도 했지요.

회사의 경영에 '배놔라 감놔라'하는 간섭도 많아져요. 최근 SK㈜가 곤경에 처한 SK글로벌이란 계열사를 지원하려고 하자 소버린이 이를 반대하고 나섰죠.

그렇다면 이렇게 귀찮은 일이 많이 생기는데 굳이 외국인의 주식투자를 허용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길 거예요. 그건 잃는 것보단 얻는 게 더 많다는 판단에서죠.

외국인들이 1천원짜리 A회사의 주식을 사들여 1만원에 팔았다면 큰 돈을 번 게 되지만 주식값이 많이 올랐으니 A회사의 가치도 그만큼 많이 높아진 거예요. 이런 현상이 다른 기업으로 계속 옮아간다면 우리나라 경제가 전반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답니다.

회사 경영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어요. 예컨대 삼성전자의 주식을 사려는 외국인들은 삼성전자를 다른 외국기업과 요모조모 비교해 볼 겁니다.

그런 뒤에 삼성전자를 팔고, 경쟁 외국기업의 주식을 사들인다면 삼성전자 경영자들은 자신들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이를 해결하려 하겠죠.

'글로벌 경쟁'이란 말 들어보셨죠. 이제 국내기업들끼리가 아닌 전 세계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주식시장의 개방으로 이같은 객관적인 평가가 꼭 필요한 것이 됐어요.

경영 간섭도 나쁜 것만은 아니예요. 올해 초 SK텔레콤이 특정 사업에 대한 투자계획을 늘렸다가 외국인들이 '불필요한 중복투자'라며 반대하자 이를 철회한 적도 있지요.

누구 말이 맞느냐는 좀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주주들의 뜻을 무시하고 회사 마음대로 경영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은 또 다른 발전이라 할 수 있지요.

다만 외국인들의 투기성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흘러 들어와 특정 회사의 주가를 원래 가치 이상 급격히 올리거나, 회사의 경영권을 샀다가 제3자에게 다시 파는 일이 벌어지면 시장이 혼란스러워질 수는 있지요.

정부에서도 이를 막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만들어 놓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우리 기업들이 더 튼튼해지고, 주식을 투기가 아닌 투자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사실이에요.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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