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법 28일부터 시행] 신문에만 불평등한 점유율 규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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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개혁인가 언론통제인가.

올해 1월 1일 국회에서 통과된 신문법(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보장에 관한 법률)과 언론중재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28일 발효된다.

그러나 출발부터 산뜻하지 않다. 막도 오르기 전 이들 법은 정당성 논란에 휩싸인 상태다. 이미 3건의 헌법소원이 헌법재판소에 제기됐고, 법 개정 움직임도 일고 있다. 반면 언론 관계법은 실효성 없는 누더기에 불과해 위헌 주장은 터무니없다는 의견도 있다. 입법 과정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언론 관계법. 전문가들이 여전히 지적하는 독소조항은 무엇이며, 언론 환경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 "업종따라 다른 점유율 기준 적용한 적 없어"=신문법에 따르면 발행부수 기준으로 1개사가 30%, 3개사가 60% 이상 시장을 차지하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된다. 공정거래법(3개사 75%)보다 강화된 기준이다.

물론 이에 해당한다고 바로 제재를 받는 건 아니다. 그 지위를 남용해 시장질서를 해치면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이에 대해 박준선 변호사는 "특별한 근거 없이 신문시장에만 차등 기준을 적용하는 건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연세대 윤영철 교수는 "방송과 인터넷 등 뉴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신문만의 점유율을 문제삼는 건 적절치 않다"고 지적한다.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금까지 업종에 따라 (일반적인 기준과)다른 시장점유율 기준을 적용한 적은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여당은 논란 끝에 점유율 산정 기준을 11개 중앙 종합일간지에서 전국 일간신문(120여 개 추산)으로 확대했다. 중앙.조선.동아 세 메이저 신문 죽이기라는 비판에선 조금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발행부수 산정을 둘러싼 혼란은 불가피하다. '마이너 신문'의 현주소가 그대로 드러나 오히려 그들이 광고 수주에 타격을 입을 거라는 예측도 나온다.

◆ 특별법으로 경영자료 요구는 과잉규제=신문법은 전체 발행부수와 유가 판매부수, 구독료 수입과 광고수입, 100분의 5 이상의 주식을 소유한 주주 등을 신문발전위원회에 신고하고, 신문발전위원회는 그 내용을 공개토록 했다.

그러나 상당수 학자들은 특별법을 제정해 신문기업에만 다시 경영정보를 보고하게 한 것은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신문사를 포함해 일반 기업은 경영자료를 과세당국에 제출하고 있다.

또 정부를 감시해야 할 신문의 영업상 비밀을 모두 노출시킨다면 비판의 날은 무뎌질 거라고 우려한다. 투자자를 세세히 밝힐 경우 권력에 비판적인 신문엔 투자를 꺼릴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고려대 임상원 명예교수(언론학부)는 "언론사는 공적기관이 아닌데도 상법상 허용된 범위를 넘어 자료를 요구하는 건 과잉요구"라고 비판했다.

◆ 세계 유례 없는 '법정기관의 시정권고'=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나라 중 법정기구로 언론중재위원회를 두고 있는 건 한국이 유일하다. 대부분 언론 스스로 독자의 권리 침해를 예방하고 보전한다. 그런데 우린 거꾸로 언론중재위에 막강한 힘을 실어줬다.

새 법은 중재위가 해당 언론사에 직권으로 시정을 권고하고 그 내용을 외부에 공표할 수 있게 했다. 또 피해자가 아닌 제3자도 중재위에 시정권고를 신청할 수 있다. 이런 규정들로 인해 언론시민단체 등의 막무가내식 중재 신청이 봇물을 이룰 가능성도 있다.

이재교 변호사는 "언론중재위에 대한 정부 영향력을 최소화할 방안을 마련하고 제3자의 시정권고 신청권 등은 반드시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미디어 융합이 대세=신문사는 뉴스통신.방송매체를 겸영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신문.방송.통신 등 미디어 간의 융합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시대착오적이라는 게 많은 학자들의 주장이다. 독과점 체제에 안주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위성.케이블.DMB(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 등 뉴미디어로 문어발식 확장을 하는 상황과 비교된다.

강원대 정윤식(신문방송학) 교수는 "뉴미디어 정책의 핵심 가치는 다양성 확보"라며 "신문사가 가장 먼저 케이블 뉴스 제공 사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 사업자가 방송영상 산업의 30% 이상을 차지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누구나 시장에 뛰어들 수 있게 해야 정보기술(IT) 초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영국.독일 등 모든 선진국들은 미디어 간 겸영을 기본적으로 허용한다.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multi use)'라는 경제적 원리를 미디어 기업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인식에서다. 단 특정 언론이 전체 미디어 시장의 일정 점유율 이상을 점할 때에만 규제한다. 이에 따라 미국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등 유력 신문사들은 많은 방송사를 소유해 다각경영을 실현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아사히신문과 요미우리신문 등 전국지들이 지상파 방송을 겸영해 수익 안정을 꾀하고 있다.

◆ 군소 신문 옥석 가려 지원을=신문발전기금으로 정부가 신문을 직접 지원할 수 있는 법 조항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에선 "돈으로 언론을 육성한다면 국가가 언론에 개입할 여지가 크다"며 특히 코드가 맞는 특정 언론에 자금이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많은 언론학자들은 지원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제 조건이 있다. 우선 "지원하되 간섭은 없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또 일부 지역의 경우 신문 수가 과다해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을 하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국민 세금을 나눠먹기식으로 지원한다면 부작용은 더욱 커질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엄격하고 합리적인 기준으로 지원해 신문의 옥석이 가려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한국언론재단 김영욱 박사는 "이런 조건하에서 한국 신문저널리즘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리고, 엄격하게 지원사업을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 선진국에선 신문규제 최소화=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대부분은 신문산업에 대해 규제보다는 자율에 맡기고 있다. 신문 특별법을 갖고 있는 나라는 8개국이지만, 그것도 독일.오스트리아 등은 신문의 자유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한 취지에서다. 권위주의 정권의 장기 집권으로 민주주의 발전이 늦어진 터키와 포르투갈 정도가 한국과 일부 비슷한 법을 갖고 있다. 나머지 국가들은 정부 개입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법 자체를 만들지 않았다.

더구나 자연적으로 성장한 시장점유율을 문제삼는 국가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일부 국가에서 인수합병 시에 한해 점유율을 제한하고 있는 정도다.

◆ 특별취재팀 = 김택환 미디어 전문기자, 이상복(문화부).김정하(정치부)기자, 강종호 중앙일보 변호사

① 시장지배적 사업자 추정-위헌소지

◆ 일반적인 시장지배적 사업자 추정 기준(3개사 75%)을 특별한 근거 없이 신문산업에만 차등 적용하는 건 헌법상 과잉입법 금지 원칙에 위배. 또 헌법상 평등원칙에도 어긋나.

◆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뉴미디어들이 속속 출현해 신문 영향력이 줄어드는 현실에서 신문만을 규제하는 건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 신문 단일시장만 규제하는 선진국은 없어.

②경영자료 신고 및 공개-위헌소지

◆ 신문사를 포함해 일반 기업은 경영자료를 과세 당국에 제출. 그러나 특별법을 제정해 신문기업에만 다시 경영정보를 보고하게 한 것은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배. 게다가 신고를 받는 주체도 정부(문화관광부) 산하에 설치해 정부 입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

◆ 정부를 감시해야 할 언론의 경영자료를 대부분 노출하는 건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고 비판의 날을 무디게 만들 수 있음. 또 투자자가 드러나 정부에 비판적인 신문은 투자가 위축되는 등 기업의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할 소지.

③ 제3자에 시정권고 신청권-위헌소지

◆ 법정기관인 언론중재위원회가 직권으로 언론사에 시정권고를 하게 한 것은 헌법상 표현 및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음. 자유로운 여론 형성의 주역인 언론사에 임의로 개입하는 것은 여론의 다양성을 훼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가가 지켜야 할 중립성 원칙에도 어긋나.

◆ 피해자도 아닌 제3자에게 시정권고 신청권을 부여한 것은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 시민단체와 특정 권력기관이 이를 악용할 소지도 있어.

④ 신문·방송 겸영금지-세계 추세 역행

◆ 세계적으로 신문.방송.통신.인터넷 등 미디어 간 통합이 가속화. 정치적 이유로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금지하는 것은 시대 흐름에 역행. 신문사가 방송과 뉴미디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게 통제하는 것은 과잉규제. 뉴미디어 등장으로 경영의 어려움을 맞고 있는 신문기업에 '원 소스 멀티 유스'를 허용해 안정적 경영 기반을 구축하도록 도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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