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추적] '천덕꾸러기' 된 태백 선수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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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일 우슈 대표선수들이 돌과 흙먼지가 날리는 태백분촌 트랙을 돌고 있다. 트랙은 4레인밖에 없으며, 트랙 가운데 운동장은 돌이 많고 바람 때문에 잔디가 자라지 않아 사용할 수 없다. 아래 사진은 일반 헬스클럽보다도 작은 체련실. 태백=신원주 인턴기자

강원도 태백에는 대표선수들의 고지 훈련을 위한 제2선수촌이 있다. 1998년에 개장한 태릉선수촌 태백분촌이다. 그러나 심폐지구력을 요하는 상당수 종목 선수들이 태백분촌을 외면하고 중국이나 미국·멕시코 등에서 고지훈련을 하고 있다. 훈련비가 모자라 태릉선수촌이 일시 문을 닫을 지경까지 왔지만 고지 훈련을 위해 해외에서 뿌리는 돈이 연간 10여억원에 달한다.

수영 국가대표 20여 명은 지난 4월, 해발 1880m의 중국 쿤밍에서 3주간 심폐지구력을 끌어올리는 훈련을 하고 왔다. 대한수영연맹 직원 정부진씨는 "쿤밍에 다녀온 선수 중 3명이 지난 5월 한국신기록을 세웠다"고 소개했다. 이들은 올 가을 다시 쿤밍에 갈 예정이다.

삼성전자 육상단 선수 및 코치진 30명도 여름유니버시아드(터키)와 세계육상선수권대회(핀란드)에 대비해 현재 쿤밍에서 훈련 중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벌써 두 번째다. 오인환 삼성전자 감독은 "효과 만점이다. 쿤밍 훈련 후 허장규가 올해 초 5000m에서 13분52초대의 자신의 최고기록을 세웠고, 이은정이 5000m와 1만m에서 연거푸 한국신기록을 수립했다"고 설명했다.

◆ 훈련할 시설이 없다=대한육상경기연맹 황규훈 전무(건국대 마라톤 감독)는 "한마디로 태백은 실패작이다. 어정쩡한 높이에 미니운동장과 체력단련장만 세워놨을 뿐 시설도 태부족이다"고 말했다. 9700여 평의 함백산 자락에 4레인짜리 우레탄 트랙을 갖춘 운동장, 120평짜리 간이 실내체육관, 30평짜리 체력단련실, 5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소가 전부다. 육상경기장은 8레인이 기본이지만 태백분촌은 경사지라 석축을 쌓은 후 4레인짜리 간이운동장을 만들었다. 실내체육관은 웬만한 동네 헬스클럽보다 작은 규모다. 오승훈 분촌장은 "체력훈련을 하기 전 스트레칭을 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대한체육회는 수 년째 체육관 건립(100억원 소요)을 요구해 왔지만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아 지금은 포기 상태"라는 게 김용 대한체육회 관리부장 설명이다.

◆ 고지훈련 효과가 없다=오인환 삼성전자 감독은 "고지훈련 효과가 있으려면 1800m 이상은 돼야 하는데, 태백선수촌은 1330m에 불과해 효과가 없다"고 말한다. 한국체육과학연구원 정동식 연구처장(생리학)도 비슷한 생각이다. "1300m대라고 효과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제대로 된 훈련효과를 보려면 1700~2500m는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복싱.우슈 등은 제한적이지만 효과를 인정했다. 복싱 대표팀 오인석 감독은 "선수들이 태백에서 훈련을 하고 나면 몸놀림이 가벼워진다"고 말했다. 정동식 처장은 "사람 몸의 고도별 산소섭취량을 연구한 자료는 없다"며 "다만 극도의 심폐력을 요하는 육상 장거리나 사이클.수영 등은 효과를 얻기 어렵고, 다른 종목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누가 이용하나=태백분촌은 황영조가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후 국내에도 고지훈련장이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높자 정부 예산을 받아 지어졌다. 그러나 정작 대표선수들은 외면하고 고지훈련이 별로 필요없는 종목이나 일반 선수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이용실적이 부진하자 2003년부터 일반팀에 문호를 개방했기 때문이다. 선수촌은 1인당 하루 2만1000원의 식비와 5000원의 관리비를 받고 있다.

◆ 왜 태백에 지었나=체육회는 당초 쿤밍에 고지선수촌을 세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당시 김운용 회장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게 현 체육회 임원들의 주장이다. "효과는 떨어지지만 국내에 세워야 한다"는 게 김 전 회장의 확고한 생각이었다고 한다. 오진학 전 체육회 훈련부장은 "한라산.지리산, 그리고 지금 위치인 함백산 세 곳을 놓고 검토했으나 한라산과 지리산은 국립공원이라 훈련장 건립 자체가 불가능해 할 수 없이 태백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태백분촌은 초기 공사비 29억원에 우레탄 트랙.운동장 둑 쌓는 비용 등 15억원이 추가로 들었다. 현재 체육회 파견 2명과 용역사 직원 8명 등 10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올해 예산은 운영비를 포함해 3억1900여 만원이다.

태백=신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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