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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고래 싸움'에 박주영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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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박주영의 고민
26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보카 주니어스의 친선경기에서 박주영이 생각에 잠겨있다.(서울=연합뉴스)

박주영(20.FC 서울)의 얼굴은 피곤과 짜증에 절어 있었다. FC 서울과 보카 주니어스(아르헨티나)의 친선경기가 열린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 박주영은 스포츠신문이 제정한 상을 받으면서도, 보카 주니어스 구단주와 기념촬영을 하면서도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천재 스트라이커'가 시들어가고 있다. 국가대표와 청소년대표, 소속팀을 쉴 새 없이 오가며 혹사당한 박주영은 끝내 발 부상을 당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더 심하다. 소속팀과 축구협회가 사사건건 부닥치면서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서울 구단은 "박주영이 보카 전에 뛸 수 있는데도 대표팀 의무팀장과 본프레레 감독까지 나서서 '못 뛴다'고 하는 바람에 모처럼 마련한 잔치판에 재를 뿌렸다"며 협회를 비난했다. 반면 축구협회 유영철 홍보국장은 "동아시아대회 대표팀 소집 기간이지만 FC 서울 선수들이 친선 경기에 나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훈련 내용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라고 말했다.

박주영의 부상에 대한 진단도 양쪽이 전혀 달랐다. 대표팀 최주영 의무팀장(물리치료사)은 "족저건막염을 앓고 있어 재활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고, FC 서울 주치의 이경태 박사(정형외과 전문의)는 "가벼운 신경종일 뿐이다. 게임을 뛰는 데 무리가 없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둘은 모두 축구협회 의무분과위원이다.

어쨌든 박주영은 보카 전에 뛰지 않았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다. 박주영이 동아시아대회에 뛴다면 이번에는 서울 구단에서 반발할 수 있다. 더 이상의 소모적인 대립은 선수를 죽이는 길일 뿐이다. 협회는 대표선수 소집과 관리에 좀 더 명료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선수가 다쳤다면 의무분과위원회 소속 전문 주치의를 통해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내려야 한다. 감독이 선수의 일거수일투족까지 시시콜콜 언급하지 않도록 미디어담당관이 역할을 해 줘야 한다. 서울 구단도 협회와 싸움 때문에 선수가 희생되지 않도록 세련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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