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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격차 두드러진 헝가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열린 유럽 노인복지연맹회의에 참가했던 김집·손춘호 의원과 필자는6월5일 연맹 측이 주선한 회의참석자들의 헝가리 단체관광에 끼여 2박 3일간 동구 공산국인 헝가리를 둘러봤다. 우리 일행은 헝가리 국영관광회사의 하이드로포일 괘속정을 타고 빈에서 하오 2시에 출발, 중부유럽의 젖줄인 다뉴브강을 5시간 동안 거슬러 올라 부다페스트에 닿는 이색적 여행을 했다.
한강의 폭보다 1·5배 정도 넓은 다뉴브강은 수목이 울창한 양안까지 물이 찰랑거려 많은 화물선이 오르내리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다뉴브강을 끼고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및 체코가 인접해 있다. 필자는 강물 올라가면서 헝가리와 체코가 오스트리아 쪽에는 엄중한 감시망을 쳐놓고 있었으나 두 공산국 상호간에는 그런 것이 없는 것을 주의 깊게 보았다. 안내원은 체코와 헝가리 쪽에서·오스트리아 쪽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이 가끔 사살되는 일이 있다고 설명했다.
부다페스트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입국에 별문제가 없었다. 다만 선착장에 붉은 별표를 모자에 단 군인들이 총을 들고 서성대는 것을 보고 사회주의 국가의 첫인상을 실감했다.
그러나 여느 고풍스런 서구도시에 와있다고 착각할 경도로 동구권에선 헝가리가 가장 자유스럽고 안정된 국가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동행한 서구인들은 입을 모았다.
헝가리는 68년 1월 1일부터 대담한 신경제 정책을 폈다. 기업에 대해 생산 및 판매의 독립성을 허용하고 기업간의 경쟁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도록 했으며 노동자와 경영자가 이윤을 분배할 수 있도록 했다. 배급제도를 없애고 제한적이나마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했다.
동구권을 많이 돌아보았다는 한 프랑스인은『동구 어느 나라의 도시든지 시민들이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 줄을 길게 서 있는 광경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부다페스트에는 늘어선 줄을 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자 60대의 변호사로서 부업으로 관광안내원을 하고있다는「포즈나니」씨는『왜요. 한군데 있답니다. 서방국가로 관광여행을 가기 위해 여행사 앞에 길다란 줄이 평일에 서지요』라고 되받았다.
헝가리는 배급제를 없애고 시장원리를 도입했기 때문에 여타 사회주의 국가에 나타나는 병폐인 물품의 품귀현상이 없다고 한다.
남한 만한 면적에 인구는 1천 74만 명으로 1인당 연간 국민소득이 3천 3백 초70달러(80년) 몽고계통의 마자르족 후예인 순수 헝가리인들은 우리와 모습이 비슷했으나 오랜 새월을 거치는 동안 혼혈이 되어 순수 헝가리인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동구경제의 우등국인 헝가리 경제제도를 배우자는 중공의 뒤늦은 학습열도 주마간산격의 여행에서나마 이해가 감직 했다.
그러나 헝가리 경제라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6백억 달러에 이르는 외채문제가 그렇고 역설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에서 시장경제 제도를 도입해놓고 보니 빈부의 차가 나타나 국민간에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는 현상 등등이 그랬다.
그래서 젊은이들의 자살 기도 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덴마크보다도 높다는 비공식 통계가 있다고 들었다.
안내원으로부터『열심히 일하면 자기 재산을 늘릴 수 있지만 세금이 많아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체제가 어떠하든 세금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똑같은데 고소를 금치 못했다.
부다페스트는 아름다운 다뉴브강을 사이에 두고 옛 왕도의 유적이 많은 부다와 상업지구로 18세기부터 눈부시게 성장한 페스트 지역이 19세기에 하나의 도시로 합쳐진 쌍둥이 도시.
시가지는 고색창연 하지만 거리는 비교적 깨끗했다.
신식 빌딩은 드문 편이었지만 최근에 새로 지은 10층 짜리 한 동의 아파트 길이가 무려 6백∼7백여m나 되어 이채로웠다. 심각한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렇게 지었다는 설명이었다.
필자는 일요일 저녁에 유명한 포도산지인 파느니아 지방의 한 동굴 속에 마련된 포도주 시음장에 가봤다. 동굴입구에 70대의 노부부가 유리 담뱃대를 자꾸 사달라고 조르는 것을 보고 사회주의국가의 노인복지도 별 것이 아니구나 하는 심사를 억누를 수 없었다.
직업선택이 비교적 자유스러운 듯 했고 종교의 자유는 50년대 말부터 정부가 공식적으로 보장해 곳곳에 교회건물이 보였다.
아쉬웠던 점은 우리가 관광했을 때가 휴일(주 2일 휴무제)이어서 거리에서 많은 사람을 볼 수 없었던 점이었다.
우리는 7일 아침 버스 편으로 평온한 분위기의 대평원을 가로질러 오스트리아의 그라츠시에 도착했는데 헝가리 쪽의 국경세관의 철저하고 삼엄한 조사와 오스트리아 쪽의 방관적 조사태도가 선명하게 비교되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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