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장의 대북 ‘중대 제안’: 전력 제공의 효과와 전략적 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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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세종연구소 발행 '세종논평' 22호(2005년7월18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김정일 당 총비서와의 6월 17일 면담에서 제시한 ‘중대 제안’의 내용이 “6자회담에서 북한이 핵 폐기에 합의하면 현재 중단상태인 경수로 건설공사를 종료하는 대신 우리가 독자적으로 200만kW의 전력을 북한에 직접 송전하는 방식으로 제공하는 것”이라고 지난 12일 밝혔다. 이 같은 대북 중대 제안에 대해 일각에서 비판적 의견들을 내놓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대북 전력 공급을 위해 우리가 감당해야 할 부담과 그것이 가져올 효과에 대해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동영 장관은 대북 송전 비용과 관련해 송변전소 건설 등 초기 투자비용이 1조5천억-1조 7천억원에 달할 것이라며, 제네바 합의에 따라 100만kW급 경수로 2기를 북측에 건설하는데 한국이 부담키로 한 비용 중 미집행분 24억 달러를 전용해 이를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그밖에도 한국이 북한에 전력 200만kW를 지원할 때 전력생산 및 공급비는 현재 한전의 평균 전기 판매단가를 적용하면 연간 약 1조3천억원이 되고, 발전회사의 발전원가를 적용하면 7천억원 정도가 된다.

이 같은 비용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지만, 대북 전력 제공은 그에 못지않은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한국정부는 대북 ‘중대 제안’을 가지고 제2차 북핵 위기 발생 이후 처음으로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정부의 대북 ‘중대 제안’이 가져오고 있는 매력과 향후 대북 전력 제공이 가져올 효과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정부는 대북 전력 제공 제안으로 북핵 문제의 해결과정에서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를 확보하게 되었다. 한국의 제안에 대해 아직 북측으로부터 구체적인 답변은 나오고 있지 않지만, 정동영 장관과 김정일 총비서의 6월 17일 면담 이후 남북 대화가 전례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데서 북한이 이 제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북측이 이 제안에 대해 수정을 요구할 가능성은 있지만, 남한이 제공하려는 전력량이 현재 북측이 생산하고 있는 전력량에 버금가기 때문에 북측이 남측 제안을 전적으로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북한으로서는 신포지구에 경수로가 건설되어도 송배전선을 스스로 건설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데, 이번 남측의 제안은 송배전로 건설까지 포함하고 있으므로 보다 완벽한 패키지라고 할 수 있다.

둘째, 한국정부는 대북 전력 제공 제안을 가지고 미국과 일본이 6자회담에 더욱 적극적이고 유연하게 나오게 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직접 송전 방식에 의한 대북 전력 제공안은 미국과 일본의 경수로 건설 반대 입장에 한국정부가 실질적으로 가담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미국의 네오콘조차도 이 안에 적극 환영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국정부가 북핵 폐기시 보상 방안을 먼저 구체화해 제시하였으므로 이 두 국가들도 자신들의 역할을 보다 구체화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그 결과 기존의 비효율적이고 저속도로 진행되었던 6자회담 운영 방식을 개선하는데 한국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고 미일이 적극 협조하는 방식으로 한미일 공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셋째, 대북 전력 제공은 남북한 관계의 제도화와 군사적 긴장 완화를 가져올 것이다. 북한이 현재 대내적으로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식량과 전력 문제인데, 남측으로부터 200만kW가 들어오면 전력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지금 북한은 남측의 전기를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으로 큰 기대에 부풀어 있을 것이다. 만약 북핵 폐기로 대북 송전이 이루어진다면, 남북한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지 않는 한 단전은 없겠지만, 북측으로서는 남한을 자극하는 발언과 군사적 도발을 최대한 자제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현재 남북한 관계는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의 모색 단계’에 놓여 있는데 ‘당국간 관계의 제도화 단계’로 이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넷째, 대북 송전은 북한의 개방을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평양까지 송배전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서쪽 지역을 개방해야 하기 때문에 안보상의 이유로 군부가 반대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한반도에서 어떠한 전쟁의 발생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북측에 분명히 전달하면, 북한 지도부는 군부의 반대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북측의 전력난과 전력 불안정으로 대북 경협이 활성화되지 못했는데, 대북 전력 공급이 이루어진다면 남북 경협의 현장이 개성으로부터 평양 지역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전력 문제가 해결되면 평양의 대외적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며, 외국 자본의 유치도 보다 용이해질 것이다. 그리고 전력을 개인 가정에 판매함으로써 그만큼 세원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송배전로 건설과 대북 송전이 가져올 직간접적 경제적 효과에 대해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우리 제품을 가지고 송배전로를 구축한다면 그만큼 국내 생산유발 및 고용창출 효과가 있기 때문에, 들어가는 비용이 1조5천억이라고 해도 상당부분은 국내로 환원이 된다. 그리고 북한에 우리 전력이 공급되는 경우 남북한간에는 전압주파수가 다르기 때문에 북한의 산업기계 시스템, 전력설비 등 자본재들이 남한 전력을 받기 위해 일정 부분 우리 기술로 전환해야 한다. 따라서 전력 공급은 북한의 산업 인프라 시스템을 우리 방식과 기술 표준으로 바꾸는 단초가 되는 등 경제통합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여섯째, 대북 송배전로 건설은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남북한의 경제통합을 위해 언젠가는 북한의 낙후된 송배전선을 교체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북한체제 붕괴시 교체하려고 하면 그 때에는 감당해야 할 통일비용의 규모가 엄청나기 때문에 대북 지원 예산이 소모성 경비에 우선적으로 지출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북한경제의 재건은 그만큼 지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대북 전력공급을 위한 송배전로 건설은 언젠가 감당해야 할 통일비용을 미리 나누어 지출하는 의미가 있다.

이처럼 한국정부의 대북 전력 제공 제안은 실보다 득이 훨씬 많고, 국내외에서 폭넑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안이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매우 탁월한 선택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한국정부는 대북 전력 제공 제안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 적극적 역할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야 할 것이며, 북핵 문제가 타결되고 대북 전력 제공을 위한 송배전로 건설에 착수하게 되면 에너지 분야에서 남북공동의 상설협력기구를 만들고 전력 제공이 경제공동체 형성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준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치권은 그동안 언급에 그쳤던 대북 ‘마샬 플랜’을 더욱 구체화해 북핵 문제의 조기 해결과 북핵 폐기후 민족경제의 균형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할 것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출처: 세종연구소 발행 '세종논평' 22호(2005년7월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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