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 인사이드 피치] 206. '총재 문제'는 나중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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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중 메이저리그 발전에 더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①케네소 랜디스 ②베이브 루스

답을 고르려면 우선 랜디스가 누군지를 알아야 한다. 베이브 루스는 모두 알 테니 말이다. 랜디스는 메이저리그 초대 커미셔너다. 1920년 11월 혼란스럽게 발전해 나가던 메이저리그의 중심을 잡기 위해 구단주들이 선임한 판사 출신 커미셔너였다. 랜디스는 10년대 메이저리그의 독과점방지법 소송이 걸렸을 때 구단주들과 야구계를 옹호했다. 그래서 환심을 샀고, 구단주들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해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는 44년 타계할 때까지 메이저리그의 절대 군주였다. 그는 9대째로 이어진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재임했고, 초대 커미셔너로서 그 영향력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답은 2번이다. 랜디스가 아무리 메이저리그의 기틀을 잡고, 구단주 사이의 갈등을 해소시켜 발전의 터전을 만들었다 해도 야구를 난세에서 구해 준 베이브 루스의 영향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루스는 메이저리그 초창기 전체를, 아니 그 자체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그를 보기 위해 관중이 몰려들었고, 그의 홈런 한 방 한 방에 미국이 들썩거렸다. 야구팬임을 자청하는 미국인 가운데 루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랜디스가 누군지, 어느 팀 소속(?)인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면 다음 중 한국 프로야구 발전에 더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누군가?

①박용오 ②선동열

이번에도 답은 2번이다. 98년 12월부터 한국야구위원회(KBO)를 이끌어 온 박용오 총재는 국내 프로야구 첫 민선 총재다. 청와대에서 낙하산으로 내려보낸 관리자가 아니라 구단주들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고, 추진하기 위해 적임자로 선임한 인물이다. 그래서 역대 최장수 총재가 됐다. 그는 7년째 총재로 재임하면서 별 탈 없이 KBO를 이끌었다. 그렇지만 내년 3월까지 재임 기간을 남겨 놓은 박 총재가 아무리 야구 발전에 끼친 공로가 크다고 해도, 선동열의 그것에는 견주기 어렵다. 앞서 말한 베이브 루스와 같은 이유에서다. 팬들은 박용오라는 이름에 큰 관심이 없다. 그들은 선동열이 몇 개의 삼진을 잡아냈는지, 이승엽이 몇 개의 홈런을 때렸는지 알고 싶어한다. 총재를 보러 야구장에 가는 팬은 단 한 명도 없다.

지난주 박용오 총재가 명예회장으로 있던 두산그룹이 '형제의 난'에 휩싸이면서 프로야구판이 어수선하다. 그러나 프로야구는 총재 한 사람에 의해, 또는 어느 한 구단주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프로야구 발전의 기틀은 운동장에서 만들어지며 한국야구위원회의 구단주 총회, 이사회, 각 부처가 구조적으로 이를 관리한다. 그 기능이 제대로 움직이면 프로야구는 발전한다. 총재가 누구냐는 나중 문제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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