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성식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편적 복지보다 보편적 인권이 먼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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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선임기자

“요새 이사 와서는 큰맘 먹고 고등어 2800원짜리 한 마리 샀어요. 김치랑 지지면 그리 맛있지는 않아.”(남모 할머니·83세)

 “간혹 가다가 라면 버리는 사람이 많아. 1년, 6개월 지난 것. 약도 말도 못하게 버려. 우리 집 물건은 전부다 주운 것이야. 고기가 먹고 싶어 5000원에 창난젓을 사는데, 두 달 먹어. ”(박씨 할아버지·76세)

 국가인권위원회가 13일 공개한 비(非)수급 빈곤층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 일부다. 비수급 빈곤층은 최저생계비 이하 생활을 하는데도 자식 때문에 기초수급자가 못 돼 국가 보호를 받지 못하는 117만 명의 극빈층을 말한다. 연구팀 면접에서 박 할아버지는 창난젓을 ‘영양보충용 고기’라고 했다.

 인권위 조사를 보면 비수급 빈곤층은 소득·순재산이 기초수급자보다 적고, 적자 가구는 많다. 결식 경험과 난방 못한 경험도 더 많다. 아파도 병원 못 간 사람이 36.8%(수급자는 22.2%)에 달한다. 실업률·교육박탈 경험도 높다. 한마디로 비수급 빈곤층은 기초수급자보다 못한, 우리 사회의 가장 아래 계층이다.

 인권위가 왜 이런 문제를 다뤘을까. 인권위 관계자는 “빈곤층의 사회권 보장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회권이란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즉 생존권과 다름없다. 사회권은 보편적 인권의 문제다. 인권위의 이번 접근법이 반가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17일 부양의무자 기준을 일부 완화하는 법안(속칭 세모녀법)이 국회 보건복지위 소위원회를 통과했지만 100만 명 이상의 비수급 빈곤층이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다. 이들을 보호하려면 연간 6조원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

 무상급식·무상보육·기초연금 등의 재원 분담을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여기에 연 21조원이 들어간다. 중산층 일부는 “우리 애한테 왜 무상급식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상류층은 말할 필요도 없다. 좋은 말로 무상복지를 보편적 복지라고 표현한다. 그런 수사(修辭) 뒤에는 극빈층 100만 명의 눈물이 있다. 가장 아래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 위에다 보편적 복지를 쌓는다고 그게 보편적일 리가 없다.

 비수급 빈곤층의 30%는 기초수급자를 신청하지 않는다. 행여 자식에게 누가 될까 봐서다. 이들의 섬세한 배려 앞에서 보편적 복지라는 말이 염치 없어 보인다. 이보다 보편적 인권이 훨씬 중요하다. 100만 명의 눈물을 방치하면서 보편적 복지를 한다고? 그런 보편적 복지가 너무 싫다.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