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물건의 표시장 아닌 연구·교육·위락의 장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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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파리의 그랑팔레 미술관에선 5월말부터「문학의 기원」전이 열리고 있다.
그 한방에선 유아에서부더 국민학생에 이르는 어린이들이 상형문자가 한마디씩 적힌 카드를 가지고 문장을 만드는 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이 광경을 본 외국의 한 박물관 간부는 상폴레옹의 이집트 고대문자해독의 드라머가 실상 우연이 아님을 되뇌고 있다.
그러나 박물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아직도 문제가 많다.
개방시대의 박물관을 체험해 볼 기회가 없었으니까 그건 오히려 당연할지 모른다.
나라를 통틀어 명목이나마 박물관이라 할 기관이 1백개소 정도고 국립박물관 이라해도 서울의 중앙박물관을 포함해 5개에 불과하다. 85년까지 지방의 두 곳에 더 생긴다해도 모두 7곳. 우리의 영세한 박물관 실태는 간단히 짐작하게 된다. 영국의 박물관수가 2천개, 이웃나라 일본만해도 1천7백개소를 넘는 것 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그래서일까. 우리 국민들에겐 박물관이 생소하고 낮선 곳이 되어 있다. 1년에 한번은 커녕일생을 통해 몇 차례 박물관을 찾는 사람조차 사실은 그리 흔하다고 하기 어렵다.
박물관을 가본 사람이라도 그 경험이 그리 탐탁치 않다. 개인적으로 박물관을 방문해서 여유를 가지고 전시품을 둘러보며 즐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개는 무슨 특별 전시회가있을 때 단체입장의 줄에 끼어 엄중하게 유리관 안에 모셔진 물건들을 먼발치에서 잠깐 들여다 보는게 고작이다. 그야말로 주마간산의 일별이다.
그런 경험에서 자라온 국민들이 박물관에서 자연 별다른 감동도, 친근감도 느끼지 않을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까 박물관은「옛날 물건들을 모아다가 진열장에 넣어서 보여주는 곳」의 이미지밖에 남겨 주지 않는다.
그것은, 이제 국븍되어야할 박물관의 이미지다. 꼭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주최 해야하는나라 국민의 문화의식을 들먹일 필요는 없다.
현대의 민주·복지국가의 국민으로서 마땅히 문화를 이해하고 즐기며 살아야겠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의미에서 현대의 박물관이 새로 인식돼야겠다.
국제박물관협의회 (IC0M)위탁은「연구·교육·위락울 목적으로 문화적· 과학적으로 의미있는 수집자료를 보관,전시하는 상설기관은 모두 박물관 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1974년 이 기구의 10차 총회는 거기에「박물관은 커뮤니티에 봉사하는 기관이다」라는 개념을 부가하고 있다.
박물관은 물론 자료의 수집에서부터 그것의 보존·조사·연구·전시·교육·위락등의 기능을 모두 강조한다.
그러나 그중에도 공공에 직접 기여한다는 점에서 중시 되는것은 연구·교육·위락 기능이다.
연구기능면에선 대영박믈관이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연구직 종사자가 훌륭한 연구업적도 내고 있다. 거기 부설된 훌륭한 도서관이 세계각국의 연구가들에게 유익하게 이용되기도 한다.
박물관의 교육기능은 근래 평생교육의 이념이 강조되면서 더욱 강조되고 있다. 교육적 모임과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한 예로 미국 피츠버그의 카네기 박물관은 시민의 학교, 시민의 문화센터로서 알려져 있다.
야간에 시민을 위한 문화학습강좌가 열린다. 원하는 시민은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박물관 전시유물에 대한 해설이나 유명한 화가의 작품을 감상하는데 보조적인 기능을 위해 설치된 과정은 아니다. 생활의 현실에서 누구나 즐길수 있고 보람도 느낄수 있는 례크리에이션 활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발레 레슨, 원예교실 음악 회화 조각도예의 학급이 그것들이다.
실제로 그림을 그려보고 그뜻을 만들어 보며 발레를 익히는 가운데서 자신의 인생을 풍부하게 할 뿐 아니라 학술문화에 대한 근본적 이해에 접근할수 있다는 장점이 시민들의 호응을 부른다.
그것은 전문지식을 가진 박물관 교사의 필요를 인식시킨다.
박물관은 전시품의 수집·전시·연구에 모두 전문가를 필요로 하지만 그 교육기능을 충실히 하기 위해선 박물관 구사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특별강좌를 지도하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박물관의 전시안내에 이들의 역할은 뗄수 없다.
『박물관은 살아있다』는 책을쓴 일인 「히로세·시주무」는 특히 프랑스의 그러느볼 자연사박물관의 늙은「킁세르바퇴르」(학예연구원) 에게서 큰 감명을 받았다고 쓰고 있다.
박물관에 근무하며 연구생활로 일생을 보낸 이 전문가가 웃음을 띤 낯으로 관람자들을 맞아 친절하게 안내하는 모습에서 박물관의 사명을 다시 인식하기도 한다.
보통 박물관의 전시책임자를 큐레이터라고 한다. 외국의 큰 박물관들은 학위과정까지 두면서 큐레이터를 비롯한 박물관 전문인력을 길러 내고 있다. 우리의 현실은 그런 전문가에 대한 관심 부족에서도 통감된다.
1958년에 로뎌 위티보그(미자연사박물관)는 벌써 큐레이터의 임무는「이야기를 해주는 의미있는 전시를 하는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시대도 이젠 지나갔다.
물건을 보여주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며, 좋은 박물관 교사들이 친절히 지도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파리의「발견의 궁」에선 어린이들이 교사들의 지도아래 진열장 없이 노출되어 있는 물건들을 직접 만져보고 실험하며 늘고있다.
교육과 위락을 위한 박물관의 활동이 다시 인식 되어야겠다.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박물관에 드나들수 있다는 것은 바로 새로운 박물관시대의 개막을 뜻한다. 이 여름에 우리국립과학관은 처음으로 어린이교실을 마련하고 있다. 늦으나마그것은 조그마한 발전이다.
그것은 나라의 미래를 위한 당연한 문화 투자요, 교육투자다. 박물관에 대한 국민의 이미지도 이제 새롭게 고쳐 져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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