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기업 43% 공장 증설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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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소재 골판지 생산업체인 T사는 공장을 증설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2000년 대기업 요건(종업원 300명 이상 또는 자본금 80억원 이상)을 갖추면서 문제가 생겼다. 현행 규정상 대기업의 수도권 내 공장 증설은 엄격히 규제되고 있다. 이 회사는 1993년 이 공단에 둥지를 틀 때만 해도 중소기업 규모였다.

안산시의 산업소재 생산업체인 M사도 공장 인근에 1만 평 정도의 새 공장을 지으려고 계획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땅값이 너무 뛰어버린 데다 각종 부담금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방으로 이전하자니 석.박사급 엔지니어들이 빠져나갈까 걱정이다. 이처럼 수도권 지역에는 공장을 짓고 싶어도 각종 규제로 애로를 겪는 기업이 상당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5일 수도권 소재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수도권 기업의 공장 수요 및 애로 실태' 결과에 따르면 대상 기업의 43.6%(200개사)가 짧게는 3년 이내, 길게는 10년 이내에 공장을 신.증설하거나 이전할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이처럼 공장 수요가 있는 기업은 희망 입지 지역으로 대다수(72%)가 수도권을 꼽았다. 지방을 희망한 업체는 22.5%, 해외로 나갈 뜻이 있는 업체는 5.5%에 불과했다.

대한상의는 수도권 지역의 공장수요가 이처럼 상당함에도 각종 규제로 애로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기업은 수도권 규제 중 가장 큰 걸림돌로 과밀부담금(41.5%)과 공장총량제(30.5%), 공장 신.증설 규제(28%) 등을 꼽았다. 공장의 지방 이전에 따른 애로에 대해서는 절반가량(48%)이 '근로자 등의 지방근무 기피'를 들었으며 다음은 '낮은 시장 접근성 및 높은 물류비'(37.5%), '지방입지에 따른 실익 부족'(11%) 순이었다.

대한상의는 ▶최근 행정기관.공기업의 지방 이전과 기업도시 건설이 착실하게 추진되고 있고▶수도권의 비싼 공장부지를 매각한 후 자발적으로 지방으로 가려는 기업이 늘고 있으며▶수도권 규제 때문에 기업의 생산능력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점 등을 들어 수도권 입지 규제에 대해 전향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한상의 이경상 기업정책팀장은 "정부가 투자하라는 말만 하지 말고 기업의 투자의지가 실제 투자로 연결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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