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O 전사」받아줄 나라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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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스라엘에 의해 포위된 채 서 베이루트 에 갇혀있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운명이 하루에도 몇 번 씩 뒤바뀌고 있는 느낌이다.
「필립·하비브」미대통령 중동특사를 비롯한 레바논지도자와「아라파트」POL의장사이에 숨막히는 협상이 폭연 속에서 계속되고 있지만 금방 보일 듯 보일 듯 하는 협상의 돌파구가 쉽게 손에 잡히지 않고 있다.
더욱이 식량·식수·전력 등 생활필수품의 공급을 손아귀에 넣고있는 이스라엘군의 노골적인 위협은 간헐적으로 벌어지는 포격전의 포탄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긴박감 을 더해주고 있다.
이스라엘은 PLO 에 혈로 를 열어주지 않고 서서히 목을 죄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11일 에도 휴전을 깨뜨리고 이스라엘 군은 서 베이루트의 PLO 진지에 포격을 감행, 전와가 동 베이루트까지 번지고 있다. 서 베이루트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세계여론을 의식해 하지 않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입장은 완고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PLO와 그에 달린 8천명의 전사들을 레바논에 남겨둘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명예로운 철수만 허용하겠다는 태도다.
이 같은 이스라엘의 입장은 약간의 견해차이는 있지만 미국의 지지를 받고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중동평화라는 그들의 목표를 위해서는 PLO의 무장해제가 필수적이라는 점에 합의한 듯 하다.
그러나 PLO입장으로서는 무장해제는 곧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창설이라는 그들의 꿈을 버리는 것을 의미하고 지난 20년간 쌓아올린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결과가 된다.
또 그것은 자신의 운명을 남의 손에 넘기는 셈이 된다.
때문에「아라파트」PLO의장은 이집트로,사우디아라비아로,소련으로,프랑스로 닿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나 구원의 손길을 뻗쳐 마지막 구명 줄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고있다.「아라파트」가 마지막 요구하는 것은 11일 하오 늦게 프랑스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 보낸 베이루트평화 11개항에도 나타나 있듯이 PLO 지도부와 8천명의 전사들이 베이루트를 떠난다하더라도 레바논 안에 PLO의 정치적·군사적 대표부를 남게 해달라는 것과 전사들이 그들의 생활근거지인 피난민캠프로 돌아 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 요구는 사실 일리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정치기구인 PLO는 받아주겠다는 곳이 많이 있어도 무기를 든 전사들은 어디에서나 환영하지 않고 있다. 이들이 자국 안으로 들어오면 과거의 예로 보아 문제를 일으킬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처럼 주위의 형제 아랍국 들의 냉대가 베이루트의 협상을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지난9일 한창 협상이 무르익어 가고 있을 매에 시리아는 협상에 자신들의 참여가 허락되지 않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팔레스타인 전사들을 받지 않겠다고 발뺌을 했다.
그나마 가장 믿었던 시리아가 이쯤 되니 PLO는 즉각 평화협상을 철회하고 서 베이루트에서 왕쇄 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하비브」미 중동 특사는 급히 자신을 돕고있던「모리스·드레이퍼」보좌관을 다마스커스로 보내「아사드」대통령을 설득시키고 있지만 아직 어떤 소식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시리아가 팔레스타인 전사의 인수를 거부한 배경에는 시리아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요청 한 1백40억 달러의 인수 대가를 사우디아라비아가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이스라엘 방송들은 보도하고있다.
어쨌거나 탱크를 앞세운 무력으로 압박을 가하는 이스라엘의 위협을 벗어날 수 없다면 PL0와 전사들은 레바논을 떠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미국도 PLO가 다시는 단합된 세력으로 뭉치지 못하도록 중동지역의 여러 아랍국가들에 흩어지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워싱턴 타임즈 9일자 백악관 고위관리 말 인용 보도).
소련도「아라파트」가 마지막 구원을 요청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보낸「카두미」PLO정치국장 (외상)에게 냉대,「그로미코」외상은 분명히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겠다고 잘라 말했다.
「카말·하산·알리」이집트 외상이 10일 『팔레스타인문제해결은 어느 아랍국가의 희생을 담보로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듯이 아랍국가들도 팔레스타인문제의 불똥이 자기나라에 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느 나라도 환영하지 않는 팔레스타인전사들은 어디로 가야 하느냐하는 문제가 가장 큰 골칫거리로 등장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서 베이루트에서의 평화협상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피해는 더 커질 전망이다.
대부분의 서방 외교소식통들은 PLO안에 있는 8개 단체들이 각자 표방하는 이념이 크게 다른 만큼 뿔뿔이 흩어지게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유력한 후보지 는 이집트·시리아·요르단 및 알제리 등이 손꼽히고있지만 어느 나라도 전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PLO를 받아들일만한 중동국가의 사정은 다음과 같다.
▲시리아=다마스커스에는 팔레스타인의 망명국회인 팔레스타인 민족평의회(PNC·의석 301)가 자리잡고 있어 실질적인 PLO의 본부가 될 수 있다.
「아사드」대통령은 특히 시리아 군에서 장교로 복무했던「살라헤던·알마아니」가 주도하는 사이카파 를 후원하고 있다. 시리아에는 결국 사이카파 게릴라 수백 명과 시리아의 아랍평화유지군에 편입되어있는 1천5백 명의 팔레스타인 해방군 (PLA) 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집트=소식통들은 PLO 정치본부가 카이로에 설치될 것으로 기대.「아라파트」의장이 반대해온 캠프데이비드 협정과 팔레스타인 자치협상에 이집트가 참여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PLO의 외상 격인「파루크·카두미」와 그의 지지세력이 이집트 행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아라파트」의장은 우선 망명 처를 제공하겠다고 제의한 사우디아라비아의「파하드」왕에게 갈 것으로 예상.
사우디아라비아는 오래 전부터 PLO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아라파트」직계의 파타파 에 재정지원을 해왔다.
▲알제리=지난60년대 알제리에서 훈련받은「하릴·와지르」나「사드·사엘」같은 PLO 지휘관이 다수의 파타파 게릴라들과 함께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리비아=「가다피」국가원수는 PLO 안의 과격파로 알려진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총사령부(PFLP·GC)에 무기·자금을 지원해왔다.「아메드·제브릴」휘하의 PFLP·GC게릴라들은 트리폴리로 향할 전망.
▲남 예멘=중동의 유일한 공산국가인 남 예멘은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 (PFLP) 팔레스타인 해방민주전선(DFLP) 등 PLO 안의 공산계열을 지원해왔으며 이둘 역시 연고를 따라 수도 아든에 정착할 것으로 보인다.
▲이란=PLO 안의 과격파인 팔레스타인해방전선(PLF)과 팔레스타인투쟁전선(PSF) 등이 이란 행을 택할지도 모른다.
▲이라크=「사담·후세인」이라크대통령의 지원을 받아온 PLA의 카다시야 대대와 PLO안의 이라크세력인 아랍해방전선 (ALF)등이 이라크로 갈 것으로 전망된다.<이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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