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법원 불복할 경우 대법원에 특별상고 … 4심제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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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상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 현재의 상고심 제도는 어떻게든 개선돼야 한다.”

 지난달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내놓은 성명서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가 있다. 대법관 1인당 연간 3000건 넘는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대법원이 국민의 권리 구제와 최고 정책법원으로서의 역할, 두 가지를 모두 충실히 하기는 어렵다는 공감대가 이미 법원 안팎에 형성돼 있다. 문제는 어떻게 바꾸느냐다.

 상당수 법관은 상고허가제를 다시 도입하는 방안을 지지한다. 대법원이 상고가 필요한 사건을 정해 이들 사건만 심리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미국 대법원이나 일본 최고재판소가 시행 중인 제도다.

대법원 고위 관계자는 “우리 국민은 재판은 ‘세 번’ 받아야 공정하다는 의식이 강하다”며 “상고를 허가 받아서 하라는 방안은 실현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추진하는 게 상고법원제다. 상고되는 사건 가운데 사회적·법률적으로 중요한 사건만 대법원이 맡고, 나머지는 상고법원에서 충실히 심리해 세 번 재판 받을 권리를 보장하자는 얘기다.

 특정 사건을 대법원에서 심리할지, 상고법원에 보낼지는 대법관 4명씩으로 구성된 3개의 소부(小部)에서 결정한다. 다만 재판 결과에 따라 보궐선거를 치러야 하는 공직선거법상 당선무효사건, 사형·무기징역 등 선고 결과를 돌이킬 수 없는 형사사건 등은 필수적 심판사건으로 지정해 대법원에서 처리한다. 상고법원 판사는 고법 부장판사 이상의 경력자가 임명된다. 한승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은 “정책법원 역할과 권리 구제 기능을 분리해 상고법원을 설치하는 게 가장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정책법원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외부 인사를 수혈하겠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 요구에 대해 대법원이 내세운 논리 중 하나가 “폭주하는 사건을 신속·정확하게 처리하려면 숙련된 재판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건 부담에서 벗어나 사건의 사회적 파장까지 고려한 판결에 집중하려면 ‘법관 순혈주의’만으론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한변협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대법관 증원으로 해결하자는 입장이다. 상고법원 도입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경북대 로스쿨 성중탁 교수는 “법률 소비자인 국민이 대법원 판단을 받기 원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관 수가 늘면 전원합의체 운영이 사실상 어려워진다”며 “정책법원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라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4심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상고법원은 원칙적으로 최종심이지만 극히 예외적으로 기존 대법원 판례와 다를 경우 대법원에 특별상고하는 것을 인정키로 했기 때문이다. 또 대법원 안대로 소부가 상고사건을 어디에서 처리할지 교통정리하게 되면 재판 절차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재판에 지면 모두가 특별상고를 원할 테고, 그중 일부만 선별해 심리한다면 불만이 더 커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최현철·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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