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w York Times] 스티븐 호킹 박사의 일대기 그린 작품 사생활은 논픽션, 과학적 업적은 픽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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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호 10면

영국 물리학자인 스티브 호킹 박사의 젊은 시절을 그린 영화 ‘The Theory of Everything(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한 장면. [사진 UPI KOREA]

과학영화를 제작하는 감독들에게 말하고 싶다. “작품에 등장하는 패션, 헤어스타일보다 과학공부에 조금만 더 시간을 쏟아라”고 말이다. 관객은 과학영화의 홍수에 노출돼 있지만 단 한 편이라도 과학적 사실을 왜곡하지 않은 작품을 본 적이 없다. 일례로 지난해 할리우드 영화 ‘그래비티’는 우주선에 대한 놀랍도록 현실적인 묘사로 아카데미상 7관왕에 올랐지만 감독은 단순한 궤도원리에 대한 이해조차 없었다.

할리우드 영화 속 과학 이야기

 이와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될 두 영화가 개봉됐다. 영국 물리학자인 스티브 호킹 박사의 젊은 시절을 그린 영화 ‘The Theory of Everything(사랑에 대한 모든 것)’, 인간이 거주할 만한 새 행성을 찾다가 웜홀(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한다는 그 웜홀)을 여행하게 되는 우주인의 이야기를 담은 ‘Interstellar (인터스텔라)’다(한국에선 ‘인터스텔라’가 지난 6일 개봉했고, 호킹 박사의 영화는 다음 달 10일 개봉한다).

스티븐 호킹 박사(오른쪽)와 첫째 부인 제인 와일드의 90년대 사진. [사진 데이비스 몽고메리·케티 이미지]

첫 부인은 성가대 지휘자와 외도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호킹 박사 역을 맡은 에디 레드메인(Eddie Redmayne)은 손가락 끝부터 얼어 있는 얼굴 표정까지 루게릭 환자의 모습을 기막히게 표현해 냈다. 그가 마우스를 클릭해 스피커가 “내 이름은 스티븐 호킹입니다”라는 기계적인 미국 영어로 말하는 장면은 눈물이 날 정도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호킹 박사의 과학적 업적을 부각시키지도, 설명하지도 못했다. 개봉 후 관객은 영화를 보고도 왜 박사가 그토록 유명한지 모르고 극장을 떠났을 것이다.

 굳이 잘한 점을 찾자면, 영화는 호킹 박사의 어두운 면을 놓치지 않고 조명했다. 박사의 첫 번째 부인인 제인 와일드가 2007년 펴낸 회고록에 근거해 위대한 물리학자가 아닌 호킹 박사 개인으로서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다. 부인 와일드가 다니던 교회 성가대 지휘자와 각별해지기 시작하고, 결국 호킹 박사는 그녀와 헤어지고, 당시 그를 돌봐준 간호사 일레인 메이슨과 재혼한다. 후에 그녀와도 이혼한다.

 현재 72세인 호킹 박사는 그의 사적인 인생 이야기를 다룬 영화 제작에 살짝 망설이듯 동의했다고 한다. 아마 그가 살면서 한 일 가운데 이 영화 제작의 결정이 가장 용기 있는 결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전 부인 입장에서 그의 인생 이야기를 대중에게 공개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사는 제작자가 그의 상징인 기계 목소리를 그대로 녹음한 것을 영화에 사용하도록 허락해 줬다.

 게다가 이번 영화에서 메가폰을 잡은 제임스 마시 감독에 따르면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서 그가 “대략 모두 사실 (broadly true)”이라고 인정했다. 마시 감독은 2008년 아카데미상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바 있다.

호킹 “영화 내용 대략 모두 사실”
하지만 과학적 팩트 면에서 이 영화는 결코 칭찬받을 수 없다. 영화 초반 런던의 한 세미나에서 등장인물들이 블랙홀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분명 배경은 시기적으로 블랙홀이라는 단어가 생기기도 전이었는데 영화에선 ‘너무 강한 중력으로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깊은 구덩이’를 ‘블랙홀’이라고 설명한다.

 왜곡이 더 심한 장면도 있다. 박사는 벽난로 안에 붉은 빛을 내며 타고 있는 석탄을 바라보면서 블랙홀 또한 ‘쉭쉭’ 소리를 내며 열을 방출한다는 원리를 머릿속에 떠올린다. 그리고 곧 그다음 장면에서 박사는 옥스퍼드대에서 블랙홀이 영원하지 않다고 강연한다. 블랙홀이 입자를 뿜어내며 점점 크기가 줄어 결국은 폭발한다는 이론을 주장한다. 이전에 존재하던 이론이나 전설과는 완전 상반된 주장이다. 결국 강연 진행자가 박사의 이론을 “쓰레기”라고 규정하며 도중에 강연을 끊어버린다.

 호킹 박사가 이 장면에서 주장한 내용은 바로 ‘호킹 복사이론’이다. 영화 속 강연 진행자가 말을 끊어버릴 정도로, 그전에는 블랙홀이 모든 물질을 끌어당길 만큼 엄청난 중력을 가졌다는 이론이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호킹 박사가 양자역학을 통해 블랙홀도 입자를 방출할 수 있다는 새로운 이론을 정립한 것이다. 물리학계에서는 호킹 박사가 노벨상을 받는다면 아마 호킹 복사이론 덕일 것으로 예상한다. 그만큼 이 이론은 그의 대표 업적이다. 그만큼 벽난로를 응시하다가 한순간에 영감을 받아 순식간에 만들어낸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 영화에서 마시 감독은 이 이론이 마치 한순간의 영감에서 나온 것처럼 묘사했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온 결과물인지 알면서도 드라마틱하게 보이기 위해 자기 자신을 속인 것이다.

벽난로 바라보다 복사이론 발견?
호킹 박사는 러시아의 알렉세이 스타로빈스키 박사와 프린스턴대의 야코브 베켄슈타인 박사의 기존 연구를 활용해 ‘호킹 복사이론’을 만들어내는 데 엄청난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이론물리학 분야에서 서로 상충하는 양자이론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결합시키는 데 수학적으로 계산이 불가능할 때까지 수없는 계산 과정을 거친 것이다. 계산이 끝나기까지 두 달이나 걸렸다. 그동안 호킹 박사의 친구들과 동료 연구자들은 이 연구가 실패로 끝날 것으로 여겼다. 그들은 박사가 실패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양자이론 교과서를 책상에 펼쳐두기도 했다.

 양자이론이 블랙홀 가장자리의 중력을 헐겁게 만드는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낼 줄은 호킹 박사 자신조차 예상치 못했다. 사실 그는 계산만 했던 두 달 동안의 연구가 어디서부터 틀렸는지 알아내기 위해 무척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유감스럽게도 박사의 이런 고뇌는 영화에 반영되지 못했다.

 영화가 중간 과정을 뛰어넘고 스토리를 전개한 것은 어떻게 보면 박사의 업적을 평가절하한 것이다. 모든 발견의 과정이 너무 쉽게 묘사됐기 때문이다. 박사가 순간의 영감을 진정한 이론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선 몇 개월에 걸친 혹독한 계산 과정이 뒤따랐다. 심지어 우리들 중에 있는 과학 영재에게조차 과학은 그렇게 쉽지도, 재미있지도 않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말 그대로 영화일 뿐이다. 호킹 박사가 마땅히 받았어야 할 대중의 주목을 이번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드디어 받았기에 기쁘다. 그리고 블랙홀이 문화적 담론의 대상이 됐다는 점도 의미 있다. 하지만 영화감독들이 현실을 이용해 어떻게 더 큰 감동을 만드는지 깨달았으면 좋겠다.

번역=김지윤 코리아중앙데일리 기자 jiyoon.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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