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unday] 길 잃은 수능의 탄원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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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호 31면

제 본명은 대학수학능력시험(大學修學能力試驗)입니다. ‘College Scholastic Ability Test(CSAT)’라는 제법 근사한 영어 이름도 가지고 있습니다. 3년의 제작기를 거쳐 1993년 세상에 나왔습니다. 스물한 살이 됐지만 입시계의 대부들인 206세의 프랑스 바칼로레아, 88세의 미국 SAT에 비하면 아직 애송이입니다.

태어날 때는 촉망받는 존재였습니다. 큰형인 예비고사, 둘째 형인 학력고사와는 차원이 다른 똑똑한 막내로 인정받았습니다. 교과서를 달달 외우는 능력에 대한 테스트가 아닌, 대학 공부에 필수적인 ‘논리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첨단 문물이 될 거라는 기대를 잔뜩 받았죠. 90년대 초를 기억하십니까. 너나 할 것 없이 “단편적 지식이 아닌 창조적 사고력, 문제 해결 능력이 중요하다”고 외치던 그때 말입니다.

원래 설계도에는 언어·수리 두 개의 영역만 평가하도록 돼 있었습니다. 미국의 ‘SATⅠ’과 닮은꼴이었죠. 제가 산출한 점수는 입시 기초 자료로만 쓰고 다른 대입 전형 자료는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선택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작 단계에 들어서자 대학들이 ‘영어’를 기본 사양에 넣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미국과 달리 한국 대학에서는 외국어로 된 글을 많이 읽는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저를 발주한 교육부가 이를 받아들여 1차 설계 변경이 이뤄졌습니다. 그러자 사회·과학 교과 이해 당사자(교수·교사)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국·영·수만 중요하고 사회·과학은 들러리냐”고 외쳤습니다. 설계 책임자(박도순 당시 고려대 교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발주처가 굴복해 2차 설계 변경이 가해졌습니다. ‘사탐’‘과탐’이 생겨난 배경입니다.

그 뒤 저는 ‘누더기’가 됐습니다. 지금 어느 한 구석에도 원형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 가는 시대’ 정신에 따라 총점제에서 영역별 점수제로 바뀌었고, ‘점수로 줄 세우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던 노무현 정부의 의지에 따라 비슷한 점수를 같은 등급으로 묶는 등급제로 또 바뀌었습니다. 지난 21년 동안 전년도와 같은 식으로 시험을 치른 것은 다섯 번뿐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의식 강조에 따라 2년 뒤에는 한국사 시험이 필수로 추가됩니다.

제가 묻는 질문이 어려우면 ‘망국적 과외’를 부추긴다고 온갖 데서 욕을 먹고, 쉬우면 대학들이 ‘신입생을 어떻게 고르느냐’고 아우성입니다. 사실 저는 별로 자유가 없습니다. 2010년에 문제의 70%는 EBS의 것을 비슷하게 베껴서 내야 하는 의무가 생겼습니다.

시키는 대로 좌회전, 우회전을 거듭하다 보니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방향 감각도 마비됐습니다. 사실 제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제발 논리적 사고력 측정이라는 본래의 구실을 할 수 있도록 다시 경로를 설정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수능 올림.

이상언 사회부문 기자 joo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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