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개발이 아니라 진화하는 것 … 중국에 종주국 지위 내줄 위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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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호 18면

“한국 게임을 사다 큰돈을 번 중국 업체들이 그 돈으로 한국 게임사 쇼핑에 나서고 있다. 한국이 게임 종주국이라는 말이 앞으로 몇 년 더 유효할지 장담할 수 없다.”

윤준희 한국게임개발자협회장

크레타게임즈 대표인 윤준희(43·사진) 한국게임개발자협회장은 국내 게임업계의 현실을 이렇게 진단했다. 이 협회에는 국내 게임제작·배급에 종사하는 인원(문화체육관광부 추산 4만 명) 가운데 개발에 종사하는 70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국내 게임산업의 경쟁력이 어느 정도인가.
“온라인게임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글로벌 게임업계에서 공지의 사실이다. 세계에서 동시접속자수 400만 명 돌파라는 기록을 세운 게임도 한국 업체가 만든 ‘크로스파이어’였다. 모바일에서도 한국 업체들의 신작 출시가 가장 활발하다.”

-온라인과 모바일 게임의 시장 상황이 다르지 않나.
“사용자들이 PC보다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을 쓰는 시간이 훨씬 길어지고 있다. 온라인게임 업체들은 혹독한 구조조정기를 거치고 있다. 개발자들도 모바일로 옮겨 가고 있다. 온라인 게임은 개발 비용이 100억~200억원씩 들기도 하지만 모바일 게임은 큰 자본도 필요하지 않고 5명 정도가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모바일게임 개발 분야도 포화상태가 됐다는 점이다. 게임이 산업으로 인정받은 시점을 통상 ‘리니지’가 성공한 2000년대 초반으로 잡는데 그때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외국에서 승부를 봐야 하지 않나.
“글로벌로 봤을 때는 모바일시장 상황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다만 모바일 게임이 성공하려면 모바일 결제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 모바일상에서 아이템을 사고팔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광고수입만 노리는 게임을 팔 수밖에 없는데 한마디로 큰돈이 안 된다. 고급 스마트폰과 함께 결제시스템도 확산하면서 글로벌 모바일 시장에서 기회가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 성공한 게임을 수출하면 되지 않나.
“게임 히트작이 50억원을 벌면 그중 20억원을 마케팅 비용으로 쓴다. 그러면 내려받기 순위 차트 안에 기존 게임이 계속 머무르게 된다. 모바일 게임의 가장 강력한 마케팅 수단은 앱스토어나 플레이스토어 순위에 올라가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아무리 잘 만든 신규게임도 상위에 랭크되기 어려운 구조다.”

-경쟁력이 있다면 해외진출 길을 찾을 수 있을 텐데.
“중국 자본이 한국의 게임업체들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중국 IT기업을 키운 게 한국 게임이었다. 이렇게 성공한 뒤에 거꾸로 한국 게임회사 쇼핑에 나서고 있다. 수입의 80%를 플랫폼업체와 현지 서비스 업체가 먹고, 한국 개발회사가 20%만 가져가는 구조도 한 원인이다. 5년 전만 해도 중국은 한국 게임 개발자들을 데려가는 데 주력했다. 지금은 개발자보다 그래픽 전문가들을 탐낸다. 그림은 문화와 관련 있어 빨리 쫓아가지 못한다. 공산당의 무채색을 보고 자란 중국인들이 그래픽에 무척 약하다. 기술에 이어 그래픽, 그 다음엔 프로그래밍과 기획까지 수입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종주국이란 지위도 중국에 내줄 가능성이 있다.”

-게임 베끼기 논란을 어떻게 보나.
“하늘 아래 처음 나오는 게임은 거의 없다. 게임은 ‘개발’이라기보다 ‘진화’한다고 보는 게 맞다. 원작이라고 주장하는 게임도 찾아보면 ‘원작의 원작’이 있다. 한국이 외국 게임을 참고하는 사례보다 외국 업체들이 한국 게임을 참고하는 사례가 훨씬 더 많다. 중요한 건 사용자들이 즐거워할 수 있도록 진화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박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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