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던 옷 팔아 이라크 아이 도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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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어린이날을 앞둔 4일 아름다운 가게(공동대표 박성준.손숙)는 서울 종로구 화동 정독도서관 서울교육사료관 앞마당에서 어린이 벼룩시장 '병아리떼 쫑쫑종'을 열었다.

어린이에게 물건을 재활용하면서 이웃과 나눠 쓰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마련된 이날 행사에서 유치원생.초등학생들은 가족과 함께 1백여개 매장을 차렸다.

이들은 벼룩시장을 찾은 1천여명의 손님에게 물건을 팔아 남긴 수익금 70여만원을 이라크 어린이 돕기 성금으로 전달했다.

"책은 무조건 공짜, 다른 건 모두 5백원이에요."

읽지 않는 동화책.장난감 등 1백여점을 가지고 나와 이날 처음으로 '장사꾼'이 된 '종민이네 멋진 가게'의 주인 라종민(7.서울 한남동)군은 손님을 끌기 위해 목청껏 소리쳤다. 종민이는 "어렸을 때 쓰던 건데 친구들과 나눠 쓰고 싶다"면서 열심히 물건을 팔았다.

이날 1백여개 매장의 주인이 된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은 돗자리에 자신들이 팔 물건을 진열한 뒤 스스로 값을 매긴 가격표를 붙여 놓고 어린 자녀들과 함께 벼룩시장을 찾은 손님을 맞았다.

처음 샀던 가격의 10%로 정하거나 오래된 것은 1천원 미만, 인기있는 물건은 3천원 미만으로 정한 어린이도 있었다. 또 다른 가게를 돌아다니며 필요한 물건을 맞바꾸기도 하고 몇백원 또는 몇천원씩 주고 샀다.

벼룩시장 진열품은 주로 동화책.비디오테이프.게임CD.옷.장난감 등이었지만 아이들다운 재미있는 물건도 많았다.

별명을 따서 '깐돌이네 가게'라고 이름붙인 김무영(10).주영(7)형제는 며칠전 새끼 여섯 마리를 낳아 대식구가 된 '햄스터 가족'을 내놓았다.

형제가 자꾸 만져 스트레스를 받은 햄스터가 오래 못살 것 같아 가족회의 끝에 더 잘 돌봐줄 새 주인을 찾아주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이들 형제는 햄스터 일가족과 집을 7천원에 내놓았으나 막상 햄스터가 팔리자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들 특유의 재치가 담긴 간판도 여럿 눈에 띄었다.

장세린(9.서울 신림동)양은 '세린이의 아리따운 가게'라는 간판에 '주인:장세린, 직원:엄마.이모, 파는 물건:동화책.영어책.줄넘기.실내화.머리끈'이라고 적었다.

최유림(9.서울 암사동)양은 "쓰레기통으로 가지 않고 재활용되기를 바라는 물건을 판다"며 '제발 제발 우리를 살려주세요 가게'라고 이름지었다. 친구들끼리 물건을 사고판다는 의미에서 '또래끼리', 가훈에서 이름을 딴 '자신감 가게' 등도 인기를 끌었다.

이날 행사장에는 잔디밭에서 동화책을 읽고 헌책을 사갈 수도 있는 '잔디책방', 그림 그리기.색칠하기.종이접기.퍼즐 맞추기 등을 할 수 있는 '뒹굴뒹굴 그림 그리기 방' 등 코너가 마련됐으며 어린이용품을 가득 채운 이동식 아름다운 가게인 '움직이는 가게'도 알뜰 가족의 호응을 얻었다.

또 '꼼꼼이 아저씨네 분리수거'코너를 설치해 행사장 쓰레기를 페트병.유리.깡통.플라스틱.타는 쓰레기.안 타는 쓰레기 등 품목별로 분리 수거하도록해 어린이들에게 환경에 대한 소중함도 일깨워주었다.

한편 아름다운 가게는 오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잔디광장에서 국회의원.국회 사무처 직원 등이 참여하는 '국민과 함께 하는 나눔의 바자'를 연다. 국회의원.국회 공무원들이 기증한 물품과 아름다운 가게가 수거해 손질한 재활용품 1만여점이 선보인다. 누구나 물품을 살 수 있으며 기증품도 받는다.

박현영.민동기.고란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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