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펀드 경쟁은 'MMF 판촉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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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주요 은행들이 판매한 펀드 중 초단기로 운용되는 머니마켓펀드(MMF)의 비중이 6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펀드 판매 실적을 늘리기 위해 은행들이 벌였던 '펀드 대전'이 사실은 'MMF 대전'이었던 셈이다. 이에 따라 주택담보대출로 자금 시장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는 은행들이 예금에 들 돈을 MMF로 유도해 자금 부동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4일 금융계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올 6월 말 현재 펀드 판매액 3조9345억원 가운데 MMF가 78.6%인 3조921억원을 차지했다.

은행들 중 펀드 판매액이 가장 많은 국민은행은 14조379억원 중 MMF 비중이 63.4%에 달했다. 하나은행은 57.3%, 신한은행은 56.9%, 조흥은행은 43.5%를 각각 기록했다.

MMF 비중은 은행들이 간접상품 판매 경쟁을 본격화한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급속하게 높아지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6월 말 7802억원에 불과하던 펀드 판매액을 지난 6월 말 3조9000억원으로 확대했다. 늘어난 3조1500여억원 중 2조7000여억원이 MMF였다. 국민은행도 지난 1년간 새로 판매한 2조7000억원 가운데 MMF가 2조5500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하나은행도 같은 기간 중 2조1000여억원의 펀드를 새로 팔았지만 이 중 MMF가 1조7000억원이었다.

은행들의 MMF 판매가 급증한 것은 시중 유동성이 넘쳐나는 가운데 은행들이 단기예금 수요를 MMF로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주가가 꾸준히 상승함에 따라 주식형 펀드에 대한 고객들의 불안감이 높아졌다"며 "간접상품 판매 목표를 채우는 데 비상이 걸린 창구 직원들이 고객들에게 MMF에 가입해 시장 상황을 지켜보라는 권유를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우선 MMF 편중이 자금 선순환을 해치고 부동자금 규모만 늘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단기자금도 예금 형태로 모이면 은행이 기업이나 가계에 장기로 빌려 줄 수 있지만 펀드로 팔면 대출 형태로 운용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주식형 펀드 판매 능력이 부족한 은행이 증시로 흘러갈 돈을 MMF로 흘러다니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박리다매식으로 수수료가 낮은 MMF 판매에 주력하면 은행의 경영 수지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주식형 펀드 판매수수료가 가입액의 1.5%, 채권형이 0.4% 안팎인 데 비해 MMF 수수료는 0.1~0.3%에 불과하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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