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 정치자금 스캔들 확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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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독의 현직 경제상과 재무상 등을 비롯, 야당 당수 등 정계 요인이 거의 관련된 혐의를 받아 1년 가까이 수사가 계속되고 있는 부정 정치자금 스캔들은 최근 「빌리·브란트」 전 수상(현 사민당 당수)을 비롯, 「발터·셸」 전 대통령이 이 문제로 검찰로부터 조사를 받아 확대될 가능성이 많다고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금주 호에서 보도했다.
이 스캔들은 서독의 재벌기업인 플릭회사(지주회사)가 1백 50억 마르크(약 4조 5천억원)에 이르는 이익금에 대해 탈세하도록 도와주고 그 대신 정치인들이 여야 할 것 없이 정치자금을 얻어 썼다는 혐의를 잡고 본 지방검찰 당국이 지난해 8월 수사에 착수하면서 표면화되었다.
세법대로 한다면 순익의 절반인 75억 마르크가 국고로 들어가야 하는데 소득세법상 『국가경제에 유익하고 자본 분산에 기여한다』고 경제상이 인정할 경우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조항을 악용, 다른데 투자하는 형식으로 탈세를 조장했다는 게 수사의 초점이었다.
이 스캔들은 현재의 「람스도르프」 경제상, 「란슈타인」 경제협력상, 「마트회퍼」 우편상(전 재무상)을 비롯, 굵직한 인물들의 이름이 수두룩하게 오르내려 관련된 것으로 소문난 정당들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꼴이 된다고 검찰의 수사를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지난 3월 본 지방검찰 당국이 「람브도르프」 경제상 등으로부터 「증언」을 청취한 다음 기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뒤 한동안 잠잠했던 이 스캔들은 「브란트」와 「셸」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다시 서독 정계를 뒤숭숭하게 만들어 놓고 있다.
슈피겔지는 검찰 당국이 플릭사로부터 압수한 정치자금 수령자 명단에서 「브란트」라는 이름과 「발터·셀」이 발견됐고 이에 따라 최근 두 사람이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브란트」 전 수상은 이에 대해 최근 자신이 검찰과 접촉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이 사건과 관련된 「증인」의 자격이었으며 플릭사로부터 한푼도 받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있다.
「발터·셸」 전 대통령 역시 자신이 검찰의 조사를 받은 사실은 인정했으나 플릭사와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주장했다고 말했다.
「셸」 전 대통령은 그가 검찰이 플릭사로부터 압수한 서류에 얼마나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는지는 검찰과의 약속 때문에 밝힐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 같은 당사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본 검찰 당국은 이들에 대한 혐의가 「근거 있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슈피겔은 보도하고 있다.
이들과 같이 플릭사 명단에 올라 있는 야당인 기민당의 「헬무트·콜」 당수의 경우 70년대 초에 「플릭사가 뿌린 돈」 중 수천 마르크가 흘러 들어와 그의 선거구에서 사용 됐음을 측근 인사들이 시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74년부터 81년에 걸쳐 플릭사로부터 자금을 받은 정치인들은 40여 명, 기타 인사들을 합쳐 모두 80여 명이 되는 것으로 본 검찰은 혐의를 잡고 있다. 어느 인사에게 어떤 이유로 얼마나 돈을 주었는가 밝히는 문서들을 검찰이 확보하고 있다는 게 슈피겔의 보도다.
이 때문에 관련 혐의자들에 대한 기소 가능성이 다른 어느 때보다 더욱 커졌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그렇지 않아도 갖가지 경제 문제에 시달리면서 연정을 구성중인 사민당과 자민당의 마찰까지 빚어져 연정의 조기 와해설이 심심지 않게 나도는 서독 정가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하고 있다.【본=김동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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