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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를 중심으로 본 「7.3조치」|큰손들 주춤…회사채 사기는 쉬워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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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금리가 대폭 내리더니 며칠이 안돼서 모든 예금에 실명제를 도입하겠다는 또 하나의 한 조치가 발표되었다. 이제까지는 무기명이나 가명으로도 가능했던 각종예금과 증권투자 등을 내년부터는 본인임이 확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가계의 입장에서는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고 재산운용은 어떻게 하는 것이 유리한 것일까.
7·3조치의 내용을 가정경제를 중심으로 풀어보자.
우선 은행에 첫 예금을 하러 갈 때는 내년1월부터는 주민등록증을 꼭 지참해야한다. 번거로운 일이지만 이런 식으로 모든 예금의 주인을 밝혀둠으로써 장여인 사건과 같은 사채파동의 재발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봉급생활자나 일반가계가 저축을 하는데 겪어야할 불편한 점은 없다.
자기이름으로 써내면 되는 것이고 또 3천만원이하의 경우는 자금용처 조사도 하지 않기로 되어있으니까 아주 부자가 아닌 다음에야 예금하는데 따로 신경 쓸 일은 없다.
다만 이미 예금을 하고 있는 사람 중에서 자기 이름이 아닌 사람은 내년 7윌l일 이전에 자기이름으로 바꿔놓으면 되고 새로 예금하는 경우는 내년 l월부터 적용된다.
만약 3천만원이상을 가명으로 예금하고 있다면 일단 자금출처를 조사 받는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것이 퇴직금을 받은 돈이라든가, 출처가 분명한 경우에는 아무 문제가 안 된다. 설령 불가피한 사정이 있어서 자금출처를 밝힐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해도 83년 7월 이전까지 가명을 실명으로 바꾸기만 하면 5%의 특별 과징금만 내면 된다.
그러나 계속 가명예금으로 놓아둔 채 과징금도 내지 않는다면 자금출처를 조사한 결과 불분명안 경우 증여나 상속된 재산으로 간주되고 따라서 무거운 세금추징 등 처벌을 받게 된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처럼 예금의 실명제도가 실시될 경우 어떻게 목돈을 만들고 어떻게 굴리는 것이 유리하겠느냐다.
이번 조치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해도 우선 은행예금이 다소 줄어들 것이 예상된다. 가뜩이나 최근 들어 금리가 대폭 내렸는 데다 실명제에 따른 심리적인 위축현상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서민가계의 은행저축이야 별 영향이 없겠지만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 급전을 서로 빌어 쓰고있는 가계사채도 앞으로는 웬만하면 은행예금을 기피하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로 가장 타격을 받을 곳은 뭐니뭐니해도 주식시장이다. 주식거래를 실명제로 할뿐더러 지금까지는 세금을 매기지 않는 매매차익에도 과세키로 한 탓이다.
조치발표이후 주가가 폭락하고 있는 것을 봐도 그 충격이 얼마나 큰지를 가름할 수 있다. 따라서 주식투자는 과세방안이 확정될 때까지는 신중하게 운용할 필요가 있다.
그 밖의 저축인 회사채 등 각종채권이나 단자회사어음·CP(신종기업어음)등도 실명제의 적용은 마찬가지다.
이들의 경우 운행예금보다 금리가 높다는 이점으로 인기가 높았으나 실명제가 실시되면 아무래도 그전만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점이 오히려 가계입장에서 환영할만한 일이다. 왜냐하면 회사채 같은 것은 수익률이 높아 돈 많은 큰손들이 모조리 휩쓸어 가는 바람에 웬만한 줄 없이는 사고싶어도 살수 없었으나 큰손들이 잠잠해지면 상대적으로 일반 가계에서 채권사기는 종전보다 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조치가 나온 직후부터 시중 금값과 부동산에 대한 투기조짐이 들먹이고 있다.
사실 철퇴를 맞은 검은 돈들이 금이나 부동산 쪽으로 몰려가 값을 올려놓지 않겠느냐는 걱정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러나 종전과 같은 투기현상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 같다. 정부도 이점을 염두에 두고 내년 6월까지의 사이에 투기성이 의심되는 부동산거래는 자금출처 등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현재 분리과세하고 있는 양도소득세를 종합과세로 바꾸려는 등 여러 가지 투기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금사재기 현상이 일어난다면 외국으로부터의 금수입자유화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투기는 아니라 해도 어느 정도 오를 추세는 예상할 수 있다. 최소한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팔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지금은 7·3조치가 정부의 최종방안이 아닌 시안단계여서 앞으로 내용이 다소 달라질 여지도 없지 않아 너무 성급한 자산운용결정은 되도록 피하고 당분간 관망하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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