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시공의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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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시민들의 가슴을 섬뜩하게 한 지하철 공사장 붕괴사고가 또 일어났다. 이번 사고는 11명의 사망자와 46명의 부상자를 낸 무악재 사고가 난지 두 달도 안 된데다 서울시가 전 공구에 대한 점검을 실시, 공구별로 안전조치의 보강을 지시한 직후라서 한결 충격적이다.
사고는 굴착예정지점의 암반에 물이 스며들어 균열이 계속되다가 토압에 못 이긴 파일이 흔들리면서 일어난 것으로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폭 25m, 길이 30m가량의 복공판이 갑자기 무너져 일어난 이 사고로 6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나 사망자가 없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사고가 난 지점은 무악재 사고 후 두 차례의 안전점검결과 지질 및 시공여건상 사고위험이 높은 곳으로 분류되어 매일 2회씩 점검하도록 되어 있었다. 당국이 지시한 점검을 했는지 우리로서 알 수는 없으나 결과적으로 점검을 하지 않았거나 했다해도 눈가림으로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고가 다 그렇듯 모든 사고는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는 데서 일어난다. 서울의 모든 도로를 온통 파놓은 듯한 지하철공사의 경우 대형사고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안전수칙을 다른 어느 공사보다 철저히 지켜야 할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서울시가 지하철 공사를 84년까지 마무리 지으려는 것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등 국제적 행사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84년까지의 공기를 지키되 어떠한 사고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이율배반적인 지시가 내려진 까닭도 거기에 있다.
공기를 지키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모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공정 때문에 서민의 안전을 도외시하는 일이 용허 될 수는 없다.
비록 예정된 공기에는 대지 못하더라도 우선 인명을 아껴야하고 시민생활에 불편을 주는 일은 막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졸속공사보다는 시민의 안전을 위한다는 전제에 당국은 충실해야겠다.
이번 사고 역시 1차 적 책임은 시공회사에 있다. 최소한 두 시간, 길게는 사흘 전에 예측할 수 있는 사고였다니 더욱 그렇다. 다만 사고지점의 지반사정으로 미루어 양쪽에서 건설 중인 두개의 대형빌딩 공사와 전혀 무관한 것인지 궁금하다.
사고가 이미 예측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지하철 및 빌딩공사의 조정이라든지 교통통제 등은 서울시나 지하철본부 등에서 재빨리 손을 써서 사고예방을 하거나 피해의 최소화를 서둘렀어야 했을 것이다. 시공회사 못지 않게 감독관청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 소이다.
당국의 조사결과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 지하철 공사 84개 공구 중 27개 공구가 시공여건상 위험도가 높고 17개 공구는 장마철 사고발생 위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사람들의 주의력이 산만해지기 쉬운 여름철이라 사고가 방생할 가능성은 높다.
차를 타고 가다 철판이 내려앉아 수십m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는 일은 생각만 해도 전율스럽다. 공사를 맡은 건설회사마다 사정이 다르고 축적된 공법기술도 별로 없는 터에 단 한 건의 사고도 내지 말라는 것은 지나친 요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날림이나 졸속 공사로 공기를 맞추는 일보다 공사는 비록 더딜지라도 시민의 안전을 확보하면서 차근차근 일을 해 가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는 것은 분명하게 인정해야한다.
지상의 건조물과는 달리 지하철은
한번, 잘못되면 쉽사리 개수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 비용 또한 막대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시공 때의 잘못으로 완공 후 큰 사고가 났다면 그 책임은 누가 칠 것인가.
건설회사들이 다툴 일은 공정단축이 아니라 견실하면서 신속한 공사를 위해서 선진공법을 배우고 익히는 일이다.
기술을 축적하고. 노련하고 경험 많은 기술자를 많이 길러내는 일은 지하철공사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안전을 위해 회의를 열고 선서를 한다고 사고가 방지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모든 공사관계자들의 자세에 있다. 특히 행정당국은 공기에만 집착한 나머지 시민생활에 막대한 불편을 주고 안전마저 위협하는 사고를 경시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지하철을 건설하는 이유가 결국 시민들의 교통편의 때문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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