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필이 두 개냐" 항의 빗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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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가짜' 소동을 빚은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블라디미르 폰킨) 공연이 예정대로 열린다.

이번 파문은 홍보자료에 적힌 '다시 한번'이라는 문구가 마치 과거 몇 차례 내한공연을 가진 바 있는 같은 이름의 모스크바 필하모닉(유리 시모노프 지휘)의 공연처럼 비쳤진데 따른 것이다. 일부 예매자들의 환불사태와 항의소동을 빚은 이번 해프닝의 진상을 공개한다.

5일 예술의전당에 이어 13일 한전아츠풀센터에서 '폰킨의 모스크바 필하모닉'의 초청 공연을 마련한 한러문화예술기획은 최근 언론사에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기획사는 자료를 통해 "이 악단을 '모스크바 필하모닉'으로 홍보해 지난해 10월 내한한 '시모노프의 모스크바 필하모닉'과 동일한 단체로 오해하도록 한 것은 '잘못된 표현'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한 러시아 대사관의 확인서까지 첨부하면서 "이 악단이 사기(또는 가짜)악단으로 비춰져 유감스럽다. 러시아에는 2개의 모스크바 필하모닉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내한하는 교향악단의 영문 명칭은 'The State Symphony Orchestra of Moscow Philharmony'다. 1986년 유리 시모노프가 창단, 90년부터 폰킨이 수석 지휘자로 활동 중이다. 유령 단체나 '가짜'단체는 아니지만 러시아에서는 '폰킨 교향악단''뉴 모스크바 필하모닉'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다.

현재 러시아 모스크바에는 '모스크바' '러시아' '필하모닉' '국립(스테이트)' '아카데미' 등의 수식어를 단 교향악단이 상당 수 활동 중이다. 이 결과 현지에서도 악단의 명칭이 아니라 지휘자의 이름으로 교향악단을 식별할 정도다. 구 소련 시대엔 사실상 모든 오케스트라가 '국립'이었는데 외국에 있는 공연 기획사에서 해외용 명칭을 따로 만드는 바람에 혼란이 가중됐다.

외국에서 '모스크바 방송 교향악단'이라 불리는 팀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악단의 공칭 명칭은 '차이코프스키 기념 국립 아카데미 볼쇼이 교향악단'인데 오래 전 이름이 '모스크바 방송 교향악단'이었다. 일명 '차이코프스키 교향악단'으로도 통한다.

교향악단 간판부터 만들어 놓고 공연 때마다 단원을 모집한 다음 외국 지휘자에게 돈을 받고 지휘봉을 맡기는 경우도 있어 사정은 더심각하다. 따라서 모스크바에서 오는 교향악단은 러시아 현지에서처럼 간판보다 지휘자의 이름으로 식별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러시아 교향악단이 명칭 때문에 혼란을 빚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8월 홍콩에서도 '모스크바 필하모닉'공연이 매진사태를 빚었지만 시모노프 지휘의 '진짜' 모스크바 필하모닉은 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 순회 공연 중이었다.

지난해 1월 외신에선 '볼쇼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로 일본 오사카 태생의 여성 지휘자 니시모토 도모미(西本智.33)가 선임됐다는 뉴스를 보도하면서 일본인이 러시아의 '국립' 오케스트라를 맡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볼쇼이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1776년에 창단된 볼쇼이 극장 소속 오케스트라가 해외 순회공연 때 사용하는 명칭이다.

하지만 도모미가 맡은 교향악단은 '볼쇼이 심포니 오케스트라 밀레니엄' 인 것으로 밝혀졌다('볼쇼이'란 러시아어로 단지 크다는 뜻인데 외국 음악 팬들은 '볼쇼이 극장'을 떠올린다). 2000년 5월에 신설된 이 교향악단은 스폰서 기업을 소개받는 조건으로 수석 지휘자라는 타이틀을 빌려 준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에서는 단원 1인당 연주수당 15달러만 주면 얼마든지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주기 때문에 객원 지휘를 하기가 쉽다. 하루 공연에 연주 수당과 대관료까지 보태 1만달러(약 1천3백만원)만 내면 된다. 외국 지휘자가 러시아에 자신의 전용 악단을 만드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들은 높은 브랜드 가치의 간판에다 값싸고 우수한 음악 인력들로 구성된 '비상설' 오케스트라다. 나중에 상설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고 정상급 교향악단의 단원들도 아르바이트 삼아 여기에 참가한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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