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간세포 이용 … 급성 간부전 50대 환자 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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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B형 간염을 앓았던 차모(54·서울 송파구)씨는 돼지 간(肝) 덕분에 생명을 건졌다. 그는 지난 달 13일 급성 간부전(肝不全)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 급성 간부전이란 말그대로 간 기능이 급격히 나빠지는 질환이다. 간은 혈액 속 독소인 암모니아를 요소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간 기능이 떨어지면 암모니아가 그대로 혈액 속에 남아 몸속을 돈다. 이 혈액이 뇌까지 흘러가면 뇌 기능이 손상되고 심한 경우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급성 간부전의 생존율은 10~25%에 불과하다. 유일한 치료는 간 이식 수술이다. 김씨의 상태는 하루 이틀 내에 수술을 받지 않으면 사망할 정도(4등급)로 심각했다. 가족 중엔 간 이식 적합자가 없었다. 뇌사자 간 이식 신청을 했지만 언제 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삼성서울병원 장기이식센터 이석구·권준혁·김종만 교수팀은 바이오 인공 간 치료를 결정했다. 바이오 인공 간은 돼지의 간세포를 이용해 환자의 혈액에 축적된 독성 물질을 제거한다. 무균 돼지 간 세포를 배양해 미세 캡슐형태로 만든 다음 이를 간세포반응기(높이 1.6m, 넓이 80㎝)에 담아 간 기능을 대신하는 것이다. 혈액투석기처럼 혈액을 체외로 뽑아 간세포반응기에 통과시킨 뒤 다시 몸으로 넣어주는 식이다. 의료진은 11시간에 걸쳐 바이오 인공 간 시술을 했고, 차씨의 상태는 안정됐다. 다행히 3일 만에 뇌사자 간이식을 할 수 있었다. 환자는 지난 5일 건강을 되찾아 퇴원했다. 수술을 집도한 김종만 교수는 “간 이식 수술 환자는 보통 퇴원까지 3주가 걸리는데, 이 환자는 2주만에 퇴원할 정도로 회복이 빨랐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이 같은 바이오 인공 간 치료가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성공으로 간 이식 수술 시기를 놓쳐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례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서울병원 이석구 교수는 “향후 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급성 간부전 환자의 간 기능이 스스로 회복될 때까지 바이오 인공 간이 간 기능 전부를 대신하는 것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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