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국민연금 개혁, 대담한 발상 필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얼마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제도개혁협의회'를 만들어 공론의 장을 마련하자는 제의를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하며 연금 개혁의 시급성과 그 내용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누구나 노령을 겪어야 하는 현실에서 국민연금제도는 가장 보편적이며 절실한 근대의 사회정책을 이룬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국민연금에 관한 논의는 재정 위기론이 제기된 이후 사회적 불신이 확대되는 가운데 기금관리운용의 문제로만 국한되고 있다. 국민연금의 개혁과제는 '저부담-고급여'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며 공적연금이 지녀야 할 기본원칙인 보편성과 형평성, 그리고 지속 가능성 등 아래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첫째, 재정 운용 방식에서 현재의 국민연금은 소득의 9%를 40년 이상 불입하면 총소득의 65%에 달하는 급여액을 보장받는다는 확정급여 방식을 택하고 있다. 계류 중인 개혁안은 개인 부담률을 9%에서 15%로 인상하고 급여액을 65%에서 50%로 축소하는 내용을 골자로 담고 있다. 기금의 유지 가능성을 위해 저부담-고급여의 틀은 반드시 조정돼야 하나 성장동력으로서의 경제활동 인구가 2020년에는 전체 생산 가능 인구의 51% 이하로 추락한다는 충격적인 상황하에서 보험료 징수 총액과 연금 지급 총액의 불균형, 즉 연금재정 적자는 필연적이며 기금 수익증대사업으로 이 간격을 메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확정급여 방식은 안정된 경제성장과 노령인구 증가의 폭이 크지 않을 때에는 바람직한 방식이었다. 이러한 방식을 오랫동안 사용해왔던 유럽의 복지국가들은 경제 침체의 장기화와 더불어 기금 고갈의 심각한 위험을 이미 간파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연금 부담을 미래세대에게 전가하지 않고 당대의 세대 간 재분배 원칙으로 해결하는 방식을 채택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지속 가능한 연금제도를 위해 확정급여 방식은 근본적으로 재고돼야 한다.

둘째, 가입자가 생활이 가능한 완전 연금을 받기 위해서는 40년의 연금불입기간을 채워야 하는 비현실적 조건이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 현재 '사오정''오륙도'의 속설이 난무하는 한국사회에서 40년의 경제활동이 가능한 인구가 과연 전체의 몇 %가 되겠는가? 더욱이 여성의 경우 이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국의 평균 가입기간 22년을 계산할 때 퇴직 후 받을 수 있는 국민연금 급여 수준은 현행 제도 안에서도 불과 34%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셋째, 총연금 가입자가 아직도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50% 선을 밑도는 문제로 인한 형평성과 보편성의 문제를 들 수 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 해결에 급급한 저소득 자영업자의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단순 홍보 차원을 넘어서는 사회적 연대를 통한 보충 연금제도 마련 등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노령연금은 퇴직 이후 지난 일생 동안 본인이 활동한 경제행위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소득보장의 의미와 아울러 동시에 소득 재분배 원칙과 전 계층적 노후생활보장으로의 의미를 지녀야 한다. 한국의 정보기술(IT)산업이나 철강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비결의 하나는 시작부터 세계 최첨단 기술을 개발.도입했다는 데에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뒤늦게 시작한 연금정책이지만 어느 선진국보다 심각한 저출산 노령화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로서는 세계 최첨단의 대담한 개혁을 통해 선진국이 실패한 그간의 과정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발상이 필요하다. 또한 이는 사회계층 간, 세대 간의 사회적 협의와 합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전 국민적 '국민연금포럼'을 시급히 구성, 미래의 재앙을 방지할 것을 제의한다.

신필균 전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