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영화·TV가이드] 영화 '아일랜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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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복제 인간이 생긴다면? 세차나 설거지를 시키겠다."

마이클 베이(40)감독은 인간 복제를 둘러싼 윤리적 논쟁에 그다지 깊이 빠져든 것 같지는 않았다. 지난주 도쿄 인터뷰에서 들려준 이 답변은 농담으로는 큰 재미가 없었지만, 신작 '아일랜드'의 분위기를 소개하기에는 유용하다. 영화 초반에 그려지는 암울하고 비인간적인 미래상에 소름이 끼치더라도 30분 내외일 뿐. '나쁜 녀석들 1.2' '더 록' '아마겟돈' '진주만' 등 겨우 5편의 영화로 15억 달러 이상의 흥행수입을 올린 이 감독은 결코 자신의 장기가 화려한 액션임을 잊지 않는다.

영화의 주인공 '링컨-6-에코'(이완 맥그리거)와 '조던-2-델타'(스칼렛 요한슨)는 자신들이 환경 파괴로 철저하게 오염된 외부 세계에서 구원받아 다른 수천 명과 함께 인공구조물에서 살아가게 될 줄 안다. 이네들의 꿈은 추첨에 뽑혀 아직 오염되지 않은 자연이 남아 있는 환상의 섬에 가게 되는 것. 하지만 이 당첨이야말로 인간 복제 회사의 각 고객이 장기이식이나 대리모 출산을 필요로 하는 때가 왔고, 복제 인간은 이제 소모품으로 생을 마치게 된다는 뜻이다. 밝고 쾌적하나 규격화.획일화된 이 통제사회에 링컨-6-에코는 의문을 품게 되고, 마침내 외부 세계로의 탈출을 감행한다.

그가 인공구조물의 좁은 복도를 정신없이 내달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영화는 고속도로 추격전, 헬기와 미래형 탈것의 공중전과 폭파, 아찔한 고층빌딩에 매달리기 등 스턴트맨들의 온갖 기술과 액션적 상상력을 마치 버라이어티쇼처럼 동원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액션에 넋이 나가 복제 인간들의 불행을 잠시 잊을라치면 링컨-6-에코의 돈 많은 본체(이완 맥그리거 1인2역)가 '수명연장의 꿈'이 지닌 이기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는 다시 과잉이다 싶을 만큼의 액션을 기어이 보여줘 감독의 말을 빌리면 "더 영웅적인" 결말을 맺는다.

역설적으로 이 영화는 최근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에 크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제작진은 당초 21세기 후반이었던 시간적 배경을 크게 앞당겨 2019년으로 만들었다. '머나먼'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라서 더 소름끼칠 거란 얘기다.

"우리가 이 영화를 처음 준비할 때는 고양이의 복제가 가능했다. 그 다음에 고양이보다 복잡한 개의 복제가 가능해졌고, 이제는 인간의 차례다."

감독은 최근의 뉴스가 한국과학자들의 업적인 줄은 미처 몰랐지만 "LA 타임스의 1면을 장식했다"면서 "영화를 보고 나가는 관객들이 인간 복제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해보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물론 영화의 러닝타임만큼의 시간 동안 미래건 현재건 암울한 현실을 잠시 잊은 다음의 일이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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